
배위량(배위량,
W.M.Baird) 목사가 1894년 시찰차 최초로 안동을 다녀간
후 그 후임으로 대구 선교부를 책임진 안의와(안의와 J.E.Adams)목사가
1902년경 한국인 조사 김기원(일명 김재수)과 함께 이 지방에
전도하므로 비로소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고 교회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안 목사야말로 이 지방의 개척 선교사라 아니할
수 없다.
1903년에는
베럿(W.M.Barrett)목사와 부해리(부해리, H.M.Bruen)목사가
광범위하게 전도하였으며 장수동의 홍재삼에게 최초로 학습을
베풀었다. 그 후이으로 어도만(어도만, WC.Erdman)목사와
맹의와(맹의와, E.F.McFarland)목사가 부임하였는데 어몫ㄴ느
안동을 중심해서 거의 경북북부 전역을 순행하였다.
1909년에는
원주에서 선교하던 오월번(오월번, A.G.Welbon)목사와 별의추(별의추)의사가
조사 김영옥과 함께 안동 주재 선교사로 오게 되었는데
오목사 역시 전지역을 순행 전도하며 교회를 세웠다.
이보다
먼저 1908년 안동 선교부 설치와 함께 상주 선교사로부임했던
쏘텔( , C.C.Sawtel) 목사는
질병으로 인하여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으며 그 후임으로는
권찬영(권찬영, J.Y.Crothers)목사가 1910년에 안동에 도착하였는데
권 목사는 가장 오래, 널리 그리고 큰 영향력을 남겼다.
오 목사와 권 목사를 돕기 위해서 연위득(연위득 E.A.Renich)목사가
와서 청송 등지에서 그리고 인노절(인노절, R.E.Winn)목사가
안동을 중심으로 사역하였다.
그
밖에 위철치(위철치, G.H.Winn), 권일두(권일두, M.W.Greenfield)목사의
활약도 컸으며 국유치(국유치, W.T.Cook)목사와 권목호(권목호,
J.Y.Biothice)사역한 기록이 보인다.

아직
한국인 목사가 양성되기 전 선교사들을 도와 교회일선에서
직분을 수행했던 것으로 정식 신학교육을 마치치지는 않았으나
선교사의 전도, 치리, 순행, 심방 등의 일체 활동을 보좌하고
안독으로도 조직, 미조직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도모했던
과도기적 교직으로서 조사(조사, Helper)가 있었다.
대개
초기 교회서는 그 지방의 유력한 교인이 인도자가 되었으며
곧이어 권찰, 집사, 영수(영수, leader)직을 맡았다가 매서(매서)또는
조사로 발탁되어 여러지??을 순회하며 전도하였다. 이들
대부분이 나중에 목사 또는 장로로서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조사로서 김성삼(김성삼),
엄응삼(엄응삼), 박영화(박영화), 권중한(권중한), 서화선(서화선),
곽해문(곽해문), 임학수(임학수), 김병우(김병우)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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