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의 강력한 탄압으로 문을 닫거나 통·폐합된 교회들이 8·15해방으로 교회를 복구하거나 분립하는 등 교회 재건을 위한 힘찬 전진이 있었다. 제39회 조선 예수교 장로회 경안노회가 1945년 11월 20일, 안동 교회에서 복구노회로 모여 삼분교회·양서교회 복구, 달제 기도실을 교회로 하락, 중앙교회 복구, 서시찰내 9개 교회복구, 동편 사찰내 폐지·합병된 교회 복구, 남편시찰내 대사·석탑·박곡교회가 복구된 것을 보고 받았는데 이어 제41회 경안노회(46.12.10~14, 영주읍 예배당)에서는 박산·성내·평은·용궁ㅍ문촌교회 복구 허락, 제43회 경안노회(47.9.30-10.3. 안동예배당)에서는 간운·포동·포산·안기교회 복구허락, 제44회 경안노회(48.4.6~8, 영주교회)에서는 성저·선곡교회 북구, 개곡·쌍전교회가 신설 허락되었다.

  여기서 특기하고자 하는 것은 안동읍의 교회들이다. 1942년 2월 26일 영주읍 교회당에서 경안노회 역원회가 모여 「일개면의 일 교회 합병으로 폐지된 각 교회의 예배당을 매각하여 국방헌금 하기로」가결한 데 따라 제37회 경안노회(42.6.2, 영주읍 예배당)시에 중앙 시찰장 김영옥 목사가 「안동읍 법상교회와 안기·신세의 3처 교회는 지난 3월 15일 주일에 합동하였아옵고 신세·안기교회의 대지와 건물 매도 대금 1만 4천여원을 수금하여 9천원은 국방헌금을 하였아오며, 3천원은 안동고등여학교에 기부하였아오며, 2천원은 본 교회에서 사용하기로 하였나이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일제 말엽에는 신세교회·안기교회를 비롯한 용상 기도실까지 안동읍 모든 교회가 안동교회에 합병되어 있었고 선교사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해방 후 안동교회에서는 교회를 분립시키되 선교사들의 의도대로 붙여진 교회 이름을 동리 이름이 아닌 동·서부로 바꾸기로 하고 선교사들이 돌아오기 전에 읍 중앙에 있는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복문-시청-철도 건널목을 경계로 동쪽을 동부교회 구역으로, 선교동산 능선-구 농고의 서쪽을 서부교회 구역으로 정하고 이에 따라 교회를 분립하고 교인들도 이 경계를 원칙으로 나눔과 동시에 이사할 경우에는 이명해 주기로 하였다. 이 원칙에 따라 1946년 1월 첫째주일에 안동 동부 교회(신세 교회)가, 둘째 주일에 안동서부교회(안기교회)가 분립하게 되었고 이 후에 용상기도실도 분립하여 용상교회로 발전하고, 1950년 6월 태화 기도실을 설립하여 오늘의 도원교회가 된 것이다.

   의성 시찰내 의성 성광교회는 1949년 9월 의성읍 교회에서 분립되었다. 대립 또는 분쟁이 아니라 교회 발전을 위하여 의성북부 지역에 장로 1명, 영수 1명, 집사 3명, 세례 교인 21명으로 새 교회를 분립, 1954년 7월에 새 예배당을 의성읍 후죽 3동에 건립하였다. 이와 같이 각 시찰마다 교회들이 복구되거나 합동되었던 교회가 분립하여 제자리를 찾게 되었으니 그 상황을 자료가 부족하여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제43회 경안노회(47. 9. 30~10. 3. 안동예배당)시에 노회 상회비 부담 명세표를 보면 당시의 교회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 상회비 교회별 명세표

액   수

급  별

교 회 명

개 수

10,000
8,000
6,000
4,000
3,000
2,000

1,000

800
600

400
300

200

10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안동, 영주, 중앙
성내, 북문
예천, 점촌, 내성, 춘양, 동부
삼분, 상낙, 영양, 서부, 성곡
안계, 풍산, 국곡, 소호, 예안
지곡, 문수, 문경, 화전, 쌍계, 소산, 방하, 용상, 소천, 평은, 내매, 반송
낙평, 가곡, 평해, 황릉, 중산, 안흥, 의일, 지내, 매정, 심사, 주곡, 대상, 아곡, 오대, 반구, 심천, 국곡, 예안
박곡, 상청, 신풍, 덕ㄱ봉, 하화, 원리, 창락
제산, 이하, 화천, 가구, 동교, 서사, 창길,명동, 박산,옹천, 간운, 효갈
용궁, 우망, 괴정, 소천, 분천, 강구
하괴, 평림, 중률, 삼산, 중평, 신사, 괴당, 양서, 매정, 마동, 유동, 광덕, 월전, 원둔, 안산, 금호, 이전
문촌, 발리, 청송, 화산, 송정, 달제, 화신, 원전, 하회, 구담, 연당, 순흥, 압동, 포동
부곡, 갈동, 하령, 대평, 석탑, 포산

3
2
7
5
5
12

18


12

6
17

14

6




   해방된 이듬해 1946년 제40회 경안노회에서는 노회부서로서 존속되어온 현의부, 시취부, 규칙부, 학무부, 종교교육부, 재단부, 은급부, 재정부, 구제부, 임사부, 전도부에 추가하여 청년 사업을 지도하기 위한 청년부를 설치하기로 가결하였는데 이 청년부는 면려부로도 불려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 상1946년도 노회 부서 조직표

부   명

3년

2년

1년

   임사부

   1. 규칙뷰
   2. 종교교육부
   3. 시취부
   
   4. 재정부
   
   5. 재단부
   
   6. 전도부
   7. 헌의부
   8. 구제부
   
   9. 면려부

  김진호
  김한기 대 전수도
  김영옥  조흥노
  김광현  이석진
  임학수 박두창
  
  김중석  최영두
  
  권차성  하대성
  
  우규진  김해영
  신재건  김기팔
  우세영  주병호
  
  장재석   최영두

  김세연 이두일
  
  김우일  주병호
  구왕도  이만려
  강우근
  김은석  대 신현상
  김영우  대 이종국
  임중옥  대 임중걸
  김해영
  최상록  대 전희열
  김우일  김성환
  강우근  전규진
  이주여  권수필
  
  황병혁  이종국 

  강석진
  강복원 대 이매수
  김태두  배연원
  윤주환  황병혁
  우세영
  강병철  대 송병호
  우규진 김태두
  
  양재호
  김성봉  대 최병창
  이성학  임도현
  최영수 황병오
  김희술  대 김대규
  김성철  대 배영창
  김광현  이두일

  

   제46회 경안노회(49. 11. 29~12. 2. 안동교회)시에 정계 위원이 시찰 구역 변경안을 보고하여 채용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중앙 시찰 - 안동군 일원과 영주군 오운과 지보
   2) 북편 시찰 - 영주군 일원(단, 오운과 지보는 제외)
   3) 봉화 시찰 - 봉화군 일원
   4) 영덕 시찰 - 영덕군 일원
   5) 동편 시찰 - 영양군, 청송군 일원
   6) 서편 시찰 - 예천군, 문경군 일원
   7) 남편 시찰 - 의성군 일원
   8) 강원 시찰 - 삼척군과 묵호지방

    이후 제52회 경안노회 결의와 제38회 총회 허락으로 문경지방 교회들은 경서노회로 이관되었고 월방교회도 이관되었다. 또한 강원 시찰 교회들은 강동노회로 이관하게 되어 제53회 경안노회(53. 5. 5.~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경서노회로 가는 문경총대와 강동노회로 가는 강원시찰 총대들을 전별하는 의미에서 전원을 기립케 하고 찬송가 248장을 현인덕 목사로 인도 제창하고 회장(강석진 목사)이 기도한 후 전별 인사로 전 회원이 오른손을 들어 표하고, 전병홍 목사와 박명수 목사의 작별인사가 있었다.

   제40회 경안노회 제2회 임시노회(46. 11. 5. 15:00, 안동교회)에서 지방 노회 부흥회는 노회 개최하는 장소와 시일에 같이 개최하기로 함에 따라 제41회 경안노회(46.12.10~15, 영주읍 예배당)에서는 노회 기간 부흥회 시간을 매일 상오 5시반~7시, 상오 10~12시, 하오 7시~10시로 정하고 회의는 매일 상오 8시~10시, 하오 2시~5시로 하기로 하였다. 부흥회 시간을 가지므로써 신앙심을 북돋우는 기회로 삼았음을 볼 수 있다.

   제45회 경안노회(48.9.28~10.1, 영덕읍 예배당)에서는 이대영 목사(안동교회 제2대 목사)를 강사로 신앙 수양회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개최하였다.

  ※ 상1946년도 노회 부서 조직표

일   시

성경본문

설교제목

9월 29일 상오 5시
             상오 9시
                하오 7시반
     30일 상오 5시
            상오 9시
               하오 7시반

10월 1일 상오 5시반
          상오 9시
             하오 7시반

    요 4:10~40
    요 19:1~30
    사 6:1~끝
    요 1:1~
    딤후 2:1~26
    마 28:18~20,
    막 16:14~
    마 1:17~22
    고후 9:1~11
    요 11:21 

주님께 일감을 드리라
십자가를 생각하자
이사야의 받은 특별한 은혜

경건된 생활
주의 최대사랑

죄
교회생활


  제43회 경안노회(47.11.5, 안동교회) 임시노회에서는 선교부와 노회가 각 만원씩 내어 약한 교회의 부흥운동을 하기로 하고 실행위원으로 옥호열, 김진호, 이원영 제씨를 선정한 바가 있고, 경안노회 종교 교육부에서는 안동교회 김광현 목사가 춘부장 회갑기념으로 부흥회 일체의 비용을 내놓아 1948년 1월 23~28일, 안동교회에서 서울대 종교과 교수 신사훈 박사를 초청하여 종교교육 지도자 부흥회를 개최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은 극도로 어려운 형편이어서 의·식·주에 곤란을 당하였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보릿고개에는 그 어려움이 극에 달하였던 쓰라린 경험을 현재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갖고 있다. 교인들의 형편도 마찬가지여서 교회들이 매우 어려웠지만 그래도 외국의 구호물자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많이 들어와서 교회를 통하여 분배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 생활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었던 것은 그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한 것이라 하겠다. 구호품 옷의 경우 색상, 디자인, 크기 등이 맞지 않아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것을 입고 추위를 견디고 생활하였고, 우유가루, 밀가루, 옥수수가루 등이 나왔을 때는 떡처럼 쩌서 먹으니 우유가루는 딱딱해져서 과자처럼 겨우 깨물어 먹던 웃지 못할 일들이 있다.

    제44회 경안노회(48.4.6~8, 영주교회)에서는 「미국교회에서 선교사를 통하여 각 교회와 교역자에게 구제품이 약 세 트럭이나 분배되었음」을 구제부장 김진호 씨가 보고하니 선교사를 통하여 미국교회에 감사장을 보내기로 하였다. 특별히 이러한 일들을 감당하도록 선교협의회 위원들을 선정하여 활동하게 하였으며, 구회품의 혜택을 받았던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나오게 되어 해방후 교회 성장의 한 몫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