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후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갈린 상태에서 남한 단독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좌·우익 대결은 여전하여 좌익 세력인 공비 또는 폭도들이
준동함으로 말미암아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였고 교회는
특히 피해가 막심하였다.
제46회
경안노회(49.11.29.~12.2, 안동교회)에서는 영덕시찰에서
「삼사교회 박민익 장로의 부자와 화천교회 김영근 영수와
낙평교회 강봉흡 영수와 원황교회 김용진 씨는 피살되었고,
금곡교회는 소개로 인하여 폐쇄되었음」과 봉화시찰에서
「반송교회 예배당은 창호를 공비가 파괴하였아오며 재산
김의한 장로, 척곡 김소술 씨는 피살되었다」고 보고가
있어 노회는 본 노회 관내의 폭도에게 피살당한 교회를
위문하기로 하고 구제부가 방침을 세워 실시하기로 하였다.
제47회
경안노회(50.5.9~10, 안동교회)에서도 동편 시찰은 「영양국산교회는
소개 지구가 되어 예배당이 파괴되였든 바 금번 복구하게
되었으나 교인들의 피해가 막심하여 이석보 씨의 차남이
피살까지 당하였으며」,북편시찰은 「공비에 방화 소실된
내매교회 예배당은 건축 복구중이오며」, 영덕시찰은 「원전교회
교인 1명 납치, 현금 20만원 약탈, 교회성미 2두 피탈,
낙평교회 교인 1명 피살, 식량·의류 다수 피탈, 화천교회
교인 1명 피살, 식량·의류 다수 피탈, 영해교회 가옥 4동
소실, 교인 1명 피살, 원화교회 가옥 8동 소실, 교인 2명
피살, 매정교회 백미 4가마·농우 3두 그외 물품 다수 피탈,
금호교회 교인 2명 피살, 남정교회 식량·의류 다수 피탈」이란
충격적인 보고들이 있었음을 볼 때 일일이 다 보고되지
않은 물심양면의 피해들을 짐작케 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주일) 새벽,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참혹한 전쟁을
북한이 발발하여 공산군이 38선을 침략한 지 불과 30여일
만에 경북 북부지역이 공산군의 위협으로 남으로 후회하게
되었다.
안동은
7월 29일 소개령이 내려졌으며 풍전등화와 같이 대한민국의
존립이 위협받던 중 UN군의 참전으로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 성공과 9월 16일 낙동강 전선에서의 총반격은 전세를
역전시켜 9월 26일 서울 탈환에 이어 전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안동도 9월 30일에 수복하였다.
그러나
전란으로 인하여 안동은 전국에서도 가장 피해가 많은 8할
5부 정도가 초토화되었고 안동교가 폭파되었고 안동교회는
인민군이 점령하여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유치원, 기숙사,
수호인 사택 등이 소실되고 예배당과 목사관이 파손되는
등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노회에
보고된 교회들의 피해 상황을 보면 영주 중앙·청송·삼은·강구·포동·운산·장사리·삼사교회는
예배당이 소실되었고, 풍기 성내, 이일 안흥교회는 예배당이
파괴당하였고 춘양교회는 신축하던 예배당이 파괴당하였고,
영덕읍 교회는 부속 건물 전소, 주곡교회는 1951년 9월
25일 밤 공비들이 침입하여 예배당 반을 소실한 것으로
되어있다.
또한
서편 시찰은 「예천읍 교회 교인 가옥 52호, 문경교회 14호,
그외 교회도 수십호가 파괴되어 교회 유지가 곤란하며 본
시찰내 교인의 가재 피해액만도 1억4천4백79만 9천7백원이나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고등
성경학교 졸업반으로 신학교에 가려고 준비하던 하회교회
류전우씨는 1950년 음력 8월 6일 하회서 인민군에 의하여
학살되었고, 이하교회 전계원씨는 신학생으로 서울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당시
경북노회에 소속되어 있던 청송 화목교회 엄주선(嚴柱善)
강도사는 6·25피난을 교인들과 함께 잘하고 돌아 왔는데
인민군 패잔병에 납치되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1951년
2월 17일 인민군 10사단장에 의해 의성군 춘산면 오정동(바랑골)에서
무참히 살해되어 나중에야 시신을 발견, 경북 노회장(慶北老會葬)을
거행, 경북노회에서는 유일한 순교자가 되었다고 한다.

6·25
동란으로 예배당이 소실되거나 파괴된 교회들이 많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공비와 폐잔병 출몰로 산간지역 교회들은 집회가
매우 곤란한 형편에 있어 노회적으로는 제47회 경안노회(50.11.28~30,
안동교회)에서 예배당이 소실된 교회에 대해서 교회 부담금을
면제하여주는 결의를 한 바가 있고, 제51회 경안노회(52.5.6~9,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6·25동란 이후 미국 교회가 보내준
교회 피해 복구 자금을 분배하였다.
각
교회 복구상황이 노회시에 보고 되었는데 제49회 경안노회(51.5.8~10.
영주읍 교회)에서는 「영주 중앙교회는 신축이 여의치 못해
적당한 건물을 매입하여 수리중」, 제51회 경안노회(52.5.6~9,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포산교회는 공비로 인해 수개월
간 소개되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구 되었아오며」, 제52회
경안노회(52.11.25~28, 안동교회)에서는 「영덕읍 교회는
복구비로서 완전 수리하였아오며」, 「주곡교호, 국산교회
완전 복구」, 제53회 경안노회(53.5.5~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춘양교회 예배당 헌당, 멱실교회는 공비 방화로 예배당은
전소되고 교인 수 명이 순교당하였던 바 금번에 예배당
8간을 건축하고 복구, 영주 중앙·풍기 성내교회는 우수한
예배당으로 근대식 건축을 시작하여 진행중」,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는 「영주 중앙교회 완전 복구, 신축 53.12.6
낙성식」, 제56회 경안노회(54.11.30 - 12.4 안동동부교회)에서는
「영덕 삼사교회 30평 예배당 신축」등이다.

미국교회가
보내준 교회 복구비는 소실·파괴돈 예배당을 복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교 협의회를 통한 갖가지
지원이 있었고, 세계 기독교 봉사회에서 보내온 구호품을
노회에서는 후생부와 구제부로 하여금 분배 또는 구제활동을
함과 동시에 세계 기독교 봉사회 한국지부 경안지구 위원회
위원으로 이원영, 김진호, 반피득, 박충락, 이종국 제씨를
선정하여 활동하게 하였다.
제51회
경안노회(52.5.6~9,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 후생부가 「전년
12월 총회 본부로부터 의류 3포 미착한 것을 각 시찰에
분배, 본년 2월 세계 기독교 봉사회 한국지부로부터 온
의류 23포, 양화 반포를 감리교와 구세군과 각 시찰에 분배,
금년 3월에는 미국 체재중인 안두화 선교사 주선으로 각
목사에게 양복 1착식 온 것을 분배, 총회장이 일본서 얻어온
의류 몇점을 노회 임원에게 분배, 선교사가 보낸 식량 한
트럭」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제52회
경안노회(52.11.25~28, 안동교회)에서는 후생부가 「5월10일
C.W.S. 본부로부터 의류 50포와 소맥분 80포와 선교부로부터
400만원을 영수(대두 6석 매입)전노회 구내 신·불신, 불편,
극반자에게 분배, 구제하였아오며, 8월 12일 전 성소 병원장
백 의사가 미국서 특별 구제금으로 보내온 184만원을 임시노회
때 각 교회 시찰별로 분배 하였습니다」로 보고하고 있다.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서는 후생부가 「57년
6월 18일 선교부로부터 옥수수분 및 소맥분 346포, 7월
11일 360포의 분배 의뢰를 받아 노회 각 시찰별로 분배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3년
간 계속된 전쟁으로 살기가 무척 어렵게 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이 극에 달하였던 터라 세계 기독교 봉사회의
구호활동은 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사회 서민들에게 어렵던
시절을 견디어 내는 데 큰 도움의 손길이 되었던 것이다.

8·15광복
이후 사회가 혼란하고 6·25동란으로 민심이 극도로 피폐해
있는 가운데 있었으나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으니 이것은
오로지 선교사들의 도움과 의지할 데 없는 서민들을 향한
교인들의 전도열의가 주효해서라 하겠다.
제47회
경안노회(50.5.9~10, 안동교회)에서는 전도부가 「선교
협의회와 협력하여 12개소 교회를 복구하고, 11개소에 개척전도하여
예배당을 건축하였으며 10개소에 전도인을 파송하여 전도중에
있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제53회
경안노회(53.5.5~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풍기 성내교회
건축 보조청원과 안동 서부교회 건축을 위한 연보청원에
대하여 「봉화시찰, 북편시찰은 풍기 성내교회로 서편·남편을
비롯한 중앙·동편·영덕시찰은 안동서부교회로 허락」하였다.
안동 서부교회는 1952년 9월 10일 연견평 208평의 2층 석조
예배당 정초식을 갖고 2년 간의 공기로 완공하였다고 하며,
권영찬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군자재(목재를 위시하여 건축자재
20여 트럭분)을 공급받았다고 한다.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중앙시찰이
「고곡교회 김수만 영수가 눈물겨운 전도로 교인을 많이
얻고 예배당 9간을 건축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제59회
경안노회(54.11.30 - 12.4, 안동동부교회)에서는 영주제일교회
석조전 건축 위해 1954년 12월 끝주일에 헌금하기로 가결한
바가 있는데 영주제일교회는 1954년에 건평 150평 연건평
363평의 석조전을 시작하여 5년이 걸려 1958년에 완공하였다.
특히
노회 전도부가 선교 협의회 전도비와 노회 전도비를 활용하여
전도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는데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시에는
「①
영덕군 지품면 삼화동에 우영석 씨를 파송하여 전도하고
예배당 건평 12평을 건축중이오며
② 영덕군 영해면 원구동에 정인식 씨를
파송하여 전도하고 예배당 건평 12평을 건축중이오며
③ 영덕군 창수면 신기동에 천막을 치고
전도중이며
④ 청송군 파천면 덕촌동에 권기동 씨를
파송하여 전도하여 예배당 27평을 건축 중 준공치 못하였아오며
⑤ 청송군 파천면 중평동에 홍순삼 씨를
파송하여 천막을 치고 전도중이오며
⑥ 청송군 진보면 세장동에 강덕원 씨를
파송하여 예배당 초가 6칸 건축 중입니다.」
라고 보고하고
있다.
제63회 경안노회 (58.5.6~8, 풍기성내교회)에서는
「①
영덕군 창수면 신기동에 정인식 전도사를 파송하여 2개월
간 전도하여 천막을 치고 예배중
② 청송군 파천면 중평동에 양혜순
전도사를 파송하여 전도하고 예배당 20평을 건축 착수중이오며
③ 청송군 청송면 청운동에 권필향
전도사를 파송하여 전도하고 24평 예배당을 건축중이오며
④ 안동군 북후면 월전동에 김연복
전도사를 파송하여 전도하고 4칸 예배당을 매입 예배중입니다」
라고
보고하고 있다.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제일교회)에서는
「① 안동군 서후면
백현동에 전도인을 파송하여 4칸 집을 매입하여 교회를
설립하였음.
② 영덕군 병곡면 병곡동에 전도인을
파송하여 3개월 간 전도하고 예배당을 건축 착수함
③ 청송군 중평동에 1월부터 전도인을
파송하여 예배당 18평을 건축중 많은 효과를 얻었아오며
④ 안동군 북후면 월전동에 4월부터
전도인을 파송하여 8칸 초가를 매입 수리하여 교회를 설립」
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제65회 경안노회(59.5.5~8,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영덕군 영해면 매곡에 예배당을 건축하여 전도하는 중」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시찰별,
교회별 개척 전도는 매우 활발하여 많은 성과가 있었으나
여기에 일일이 기록하기는 어렵고 안동교회의 길안지방
교회개척 상황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1953년에
안동교회 청년회 전도대가 길안교회를 개척(예배당 4칸
대지 400평 매입)하였고, 1954년 5월에 개곡교회 출신이요,
고곡교회를 개척한 김수만 장로를 길안지방 개척전도사로
파송하였고, 1955년 8월에 김금이 전도사, 1956년 5월에
김경동 목사를 전도목사로 길안지방에 파송, 1961년에는
김순조 목사를 길안지방에 파송하고, 이해원 씨, 김태운
조사, 권석표 집사, 서재현 전도사, 김영진 씨를 임하지방,
와룡지방에 계속 파송하여 길안, 금곡, 용계, 백자(용계교회에서
분립), 송사, 금소, 신덕, 임하, 주하, 명계, 묵계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건축하였는데 「절면서 열 교회를 세운
김수만 장로의 전도사역」은 길이 빛날 것이다.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남편시찰(의성군
일원)이 노회 분립청원을 제출하였다. 내용은
「① 명 칭 : 경중노회
② 구 역 : 경안노회 의성 시찰,
경북노회 군위 청송 의성 선산 등 일부
③ 시 일 : 래노회시까지(래총회에
신청토록)」으로 허락되었다.
본
청원건이 1954년 4월 총회에서 허락되어 제1회 경중노회가
1954년 9월 20일, 의성읍 교회당에서 창립예배를 가짐으로서
출발하게 되었다. 경중노회 시찰 분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청송시찰(현서, 현동)
② 남부시찰(금성, 가음, 춘산)
③ 의성시찰(의성, 사곡, 옥산,
점곡, 단촌)
④ 중부시찰(안평, 봉양, 비안)
⑤ 서부시찰(안계, 단북, 다인,
구천, 단밀, 신평)
⑥ 군위시찰(군위, 소보, 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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