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4일 법상동 예배당(안동교회) 하층에서 경안고등성경학교가
개교하였으며 생도 25인(남21, 여4)으로 교장 이원영, 교사
김광현, 김진호, 최의숙 제씨였다고 제41회 경안노회(1946.12.10~14,
영주읍 예배당)시에 보고되었다.
이 학교는 1920년 안동읍 금곡동에 선교사
인노절(R.E.Winn)씨가 단기성경학교(5학년제, 년 2학기,
한 학기는 1개월)을 설립하였던 것인데 일제 말엽에 폐쇄되었다가
해방후 교회가 활성화 됨에 따라 이원영 목사 주선으로
제40회 경안노회(46.6.4~6, 안동교회)에서 설립이 허락되었다.
교장
이원영 목사는 일제 말기 폭악한 종교탄압 중에서 배절불굴의
신앙으로 지조를 지킴으로 인하여 구금되어 6,7성상(星霜)
옥중생활을 하다가 8·15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서 오염된
한국 교계를 정화시키는 동시에 기갈이 심한 교도(敎徒)를
위하여 진리역군 양성이 급선무라 생각하고 학생 18명을
모아 경안고등성경학교를 설립하고 개학하였다고 한다.
첫
입학자는 김기팔, 김원진, 김경동, 김정모, 남수진, 권상학,
권수학, 권오현, 이동승, 문은식, 권중기, 이영수, 박용구,
권태복, 배홍직(남15), 엄차남, 양혜순, 신은숙(여3) 제씨였다.
설립 당시는 2년제, 단과(單科)로 시작하였고 곧 보통과를
부설하였으며, 1951년에는 2학기 3년제로, 1954년에는 본과,
별과로 구분하여 본과는 중학교 졸업자, 별과는 동등의
학력을 가진자가 입학하게 되었다. 가르치는 학과는 신구약
성경, 성경도리, 구약사기, 강도학, 비교종교학, 성지리,
교회사, 교회정치, 국어, 영어, 국사, 동서양사, 음악으로
하였다.
제44회
경안노회(48.4.6~8, 영주교회)에서는 성경학원 이사를 각시찰
1인과 원장으로 강석진, 김우일, 장재석, 황병혁, 김광현,
이원영 제씨를 선정하였다는 종교 교육부의 보고를 받은
바가 있다.
1954년에는
선교사회의 도움으로 미 8군단 민사원조 계획에서 기숙사
25간 재료를 무상으로 공급받아 신축하여 학생들이 수학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48년 6월 30일 1회 졸업생 32명이
배출 되었는데 첫 입학자 18명이 전원 졸업하였고 개교후
입학자 유인호 김기웅 정국현 정종환 김분한 이상춘 김기한
이갑히 김재동 권순표 박승팔 씨가 졸업, 권계열 김부한
김은석 씨가 수료하였다고 한다. 1946년에 개교한 후 학생
상황과 졸업생들의 진출 상황을 1959년 10월까지 조사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졸업횟수 |
졸업연월 |
졸업생수 |
목사 |
강도사 |
전도사 |
1
2
3
4
5
6
7
8
9
10
11 |
48.6
49.7
51.7
52.4
53.3
54.3
55.2
56.3
57.3
58.3
59.3 |
32
14
23
13
8
25
20
13
56
62
43 |
13
4
3
.
.
1
.
.
.
.
. |
12
1
3
1
2
2
1
2
.
.
. |
4
4
6
.
3
5
9
5
19
11
5 |
1946년 9월 개교 이래 1959년말까지 역대 원장(교장)은
이원영 마삼락 조운선(마포삼락대리로)
설의돈
(교장서리)
역대교수(교사
또는 강사)는 김광현 김진호
최의숙 옥호열 허 일 허마리아 아두조 김선두
권찬영
조운선
곽가전 오승련 반피득 오상익 김기팔 윤종탁 김정모
박충락
우열성 설의돈
조종술 임학수 김기수 권상학 이정옥 (서무)서재현
(사감)권정순
역대 이사장은 권찬영 강석진 우열성
역대 이사는 (고등) 강성진 김우일 장재석 황병혁
김광현 이원영 김진호 권찬영 이영희 이성찬
반피득
김기팔 우열성 권신찬 조운선 오승련 김동숙 남수복
최영두
(보통)
이원익 김진호 조흥로 이원영 임학수 강석진 김광현
박두창
역대 감사는 김성억 박충락 박대규 이종국 이동창
김의봉 이성찬 장영락 제씨였다.

경안노회
유지재단 김광현 이사장이 제46회 경안노회(49.11.29~12.2,
안동교회)시에 본 노회 재단으로 중등학교 설립기성회 조직을
허락토록 청원하였고, 제49회 경안노회 임시노회(51.8.17,
안동교회)에서 노회 유지재단이 설립자가 되어 중학교를
설립키로 하고, 학교설립 경상비를 위하여 세례자 매 1인당
천원씩 부담하여(전체 300만원), 학교 설립 장소는 영주,
9월 신학기 개교, 명칭은 경안 중학교로 가결되었으며,
학교 운영 책임자 즉 이사로 김성억, 안언약, 강석진, 강경봉,
김태두, 김광현 제씨를 선정하였다.
경안
중학교는 학생 180명을 모집하여 3학급을 편성, 1951년
9월 27일 개교하고 동년 12월 30일 설립인가(6학급), 초대
이사장 강경봉 장로, 초대교장 정준 씨가 취임 하였으며
제51회 경안노회(52.5.6-9,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 「경안중학교는
영주제일교회에 위임하여 경영하도록」가결하였다.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는 영광고등학교(경안중
병설)설립을 위하여 노회 유지재단을 사용토록 허락하였고
이사 반피득, 정 준, 강경봉, 우열성, 강석진, 김성억,
조운선, 이성찬, 안언약, 감사 강석일, 조용하 제씨를 인준
함으로 영광고등학교는 1954년 4월 1일 설립인가(3학급),
4월 17일 개교하였으며, 1956년 2월 6일 이사장에 강석일
장로, 1957년 2월 1일 김기찬 2대 교장, 1958년 11월 17일
박대인 3대 교장 취임으로 1959년에는 중학교 342명(1-130,
2-105, 3-107), 고등학교 193명(1-70, 2-73, 3-50)계535명의
학생과 중학교 6회 졸업, 고등학교 3회 졸업이란 역사를
갖게 되어 후일에 학교 법인 영광 교육 재단이 설립되고
산하에 영광중학교, 영광고등학교, 영광여자중학교, 영광여자고등학교
4개 학교를 두는 훌륭한 기독교 교육 기관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설립
당시 경안중학교란 교명은 1954년 안동에 경안고등학교가
설립되고 1961년에 부설 중학교가 설립됨에 따라 안동으로
「경안」이란 교명을 넘겨 주고 영광 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이다.

1909년
원주에서 안동으로 온 선교의(宣敎醫) 별위추(A.G.Fletcher)가
현 안동교회 구내에 있었던 화성동 선교사 임시 주택에서
진료를 시작하므로 성소병원(聖蘇病院)이 시작되었는데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1941년에
폐쇄되고 말았다.
8·15
해방으로 1947년 권찬연(J.Y.Crothers) 선교사가 돌아와
병원을 1949년에 다시 개설하고 백거립(白居立, G.T.Bigger)
5대 원장이 시무하게 되었으며 제44회 경안노회(48.4.6~8,
영주교회)에서 성소병원 이사로 김진호, 임학수, 강석진
제씨를 선정한 바 있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병원 건물이
완전 파괴되고 말았다. 1953년 7월 8일(수) 선교사 반피득(P.V.Lierop)박사의
노력으로 경안 성서 신학원 입구 일식주택에서 애린진료소(愛隣診療所)를
대구 동산병원 분원으로 개설하였는데 개설을 위하여 구
성소병원 직원이었던 이주헌 집사가 사무장의 책임을 감당하였다.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반피득 선교사의
애린진료소 사업보고를 받고 증원한 이사 2인 김광현, 이동창
제씨를 파견하고, 성탄 연보 중 얼마를 보내기로 하였고,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는 성소병원
복구비 80만원 청원을 허락하였다.
장승벽
의사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6대 원장으로 임명되어 1957년
4월 미군의 후원과 선교부의 지원으로 철골조 2층 건물을
신축하고 다시 성소병원을 개설하였으며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서 성소병원 이사장 조운선 씨의 이사 정준
씨 청원을 인준하였고,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
제일교회)에서는 김기한 씨를 이사로 인준하였고, 1959년
1월 1일 7대 원장으로 정복득 의사가 부임하였다.
1959년
당시의 병원 진료 과목은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x광선, 물리치료, 병리시험일체, 혈액은행 등이며, 직원으로는
원장 정복득, 외과과장 이근영, 서무과장 강오전, x광선
및 약과장 유창성, 간호과장 김서운, 시험실과장 박태각,
전도사 이주한 장로 외 11명이었으며, 병원 직원들이 전도회를
조직하여 예천군 호명면 염암동에 전도인을 파송하여 80여
명의 결신자를 얻고 교회 부지 400평, 건평 20평의 목조
건물을 전도회원들의 연보로 건축하였을 뿐 아니라 농촌
전도겸 환자 무료 치료차 무의촌을 순회하였는데 주하,
신덕, 도산, 금소, 구담, 지보 도화, 평은 갈분리, 병곡
금곡, 영덕 창포, 봉화 상운, 신육원 등지에서 실시하여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1.
경안학원 설립 기성회 조직
해방
후 사회변동에 기독교적인 민주시민이 절실히 요구되어
이 나라의 주인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김광현 목사가
그 당시 안동 도당회 회장이요, 경안노회유지재단 이사장으로서
학원 설립의 뜻을 안동 도당회 회원들에게 전하여 찬성을
얻었다. 그러나 안동지역의 교회와 교인, 시민들의 경제력이
너무나 빈약하여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단을 마련할 능력이
전혀 없는 형편이었다. 여기서 강구해낸 방안이 노회유지
재단을 이용하는 길이었다.
노회유지재단이
설립자가 되어서 학원을 1951년에 설립하려고 했지만 노회유지재단이라고
해야 고작 노회안 각 교회 대지와 예배당 건물 뿐이므로
문교부가 그 재산 내역을 살펴보고 재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학교를 위한 재산이 전혀 없으니 설립에 필요한
재산을 첨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도당회와
노회 유지재단 이사회에서 재단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방법이 모색되지 않던 중 영주지역 교회에서 학원 설립
청원이 있어 1951년 8월 17일 임시 노회를 개최한 결과
경안 중학교 설립이 영주로 가게 되어 안동지역의 학교
설립이 3년 간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
이후 선교부의 새로운 선교 정책에 따라 많은 선교사들이
안동으로 오게 되고 선교사들 중에는 교육학을 전공한 선교사까지
오게 되어 학교 설립을 위한 운동이 일어났다.
1953년
11월 안동 도당회가 반피득 선교사 사택에 경안고등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 조직을 목적으로 소집이 되었는데 선교사
측에서 반피득, 우열성, 조운선, 노회측에서 김광현, 이원영,
김진호, 조종술 목사와 김재성, 이동창 장로가 참석하였고
기성회 회장으로 김광현 목사, 학교 설립에 관한 전반적
계획을 반피득 선교사가 담당하고 학교인가에 필요한 재반
사무를 이원영 목사와 김인한 선생(당시 안동 공립중학교
교사)이 담당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53년 11월 24일
제54회 경안노회에서 안동에 기독교 고등학교 설립청원이
허락되고 실무진들의 학교 설립을 위한 당국과의 교섭 결과
1954년 2월 20일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게 되었다. 설립이사는
선교사 3명, 목사 3명으로 이사장 반피득, 이사 우열성,
조운선, 이원영,김진호, 김광현 제씨 감사 조종술, 오승련(수경)
제씨로 설립 이사회가 조직되었다.
재단
이사회 정관은 「기독정신과 대한민국의 근본이념에 기하여
중등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경안 고등학교를 유지 경영함」을 밝히고 있다.
2.
경안 고등학교 개교
재단
법인 경안 고등학원이 문교부에 경안 고등학교 설립인가
신청을 함에 1954년 3월 19일 설립인가(6학급)되고, 동년
4월 1일에 재단 이사장 및 초대 교장으로 반피득 박사가
취임, 4월 6일에 입학식, 5월 14일에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교직원은 교장 반피득, 교감 김인한(국어), 교목 조종술(성경),
교사 우열성(외국어), 유성우(수학), 신현흡(과학), 이호관(사회,
서무과장 겸임), 홍병웅(체육), 김응한(교련) 제씨가 봉직하였다.
학칙(學則)에는
「교육법에 의하여 기독교 정신으로 고등 보통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하고, 교명은 경안고등학교,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읍 금곡동 180번지에 둔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 언급하여야 할 것은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 영주에 있었던 경안중학교 정준 교장과 강경봉
이사장이 학교 명의 관계로 호소문을 제출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제56회 경안노회(54.11.30~12.4,
안동동부교회)에서 「우열성 선교사가 사재 42만환을 영광고등학교에
주고 경안고등학교 명의는 인가 난 대로 하기로」합의가
이루어져서 안동에 경안고등학교란 교명이 확정된 것이다.
반피득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귀국함에 따라 1954년 5월 20일 우열성
선교사가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하고, 1955년 3월 31일 별관
교실 준공, 1956년 3월 31일 본관 준공이 있었고, 1957년
1월 18일 김인한 교감 제3대 교장 취임, 마삼락 선교사
제2대 이사장 취임, 1958년 3월 10일 2부(야간부) 인가가
있었다.
제61회
경안노회(57.5.7~9, 경안 고등 성경학교)시에는 경안 고등학교
이사장 마삼락 씨로부터 배흥직 목사 교목 청빙이 잇었고,
제63회 경안노회(58.5.6~8, 풍기 성내교회)시에는 마삼락
이사장의 경안고등학교 이사, 감사보선에 대한 보고가 있었는데
이사 우열성, 조운선, 최영두 재임, 감사 박대규 재임으로
되어 있다.
경안
고등학교의 교훈은 먼저 하나님(God First)으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의를 구하라.(마태 6장 23절)"는
성경말씀에 기초한 것이었고 기독교 교육 목표는 「첫째,
그리스도를 알게 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인격을
연마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이었다.
1959년에는
1학년 4학급 245명, 2학년 3학급 120명, 3학년 3학급 174명
계 539명의 학생과 3회 졸업이란 역사를 갖게 되어 후일에
경안학원 산하에 경안중학교, 경안여자 중학교,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가
설립되어 4개 학교를 두는 훌륭한 기독교 교육 기관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1954년 개교부터 1959년 말까지 역대 이사장은
반피득 마삼락
역대
교장은 반피득 우열성 김인한
역대
교목은 조종술 배흥직
역대
이사는 반피득 우열성 조운선 이원영 김진호 김광현
마삼락
오승련(수경) 김인한 배흥직 최영두 김동숙
역대
감사는 조종술 오승련 이동창 이종국 박대규 제씨였다.
1954년 4월 1일 반 피득 선교사 제1대 이사장 취임,
1957년 6월 13일 우 열성 선교사 제2대 이사장 취임, 1958년
11월 8일 마삼락 선교사 제3대 이사장 취임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노쇠,
병약 혹은 무의무탁한 여교역자의 생계를 돌보아 줄 목적으로
1953년 7월 8일 하오 3시, 안동교회에서 경안 성노원 발기회가
회집되었고, 동년 8월 7일 안동읍 금곡동 183-1번지에서
개원함으로 경안 성노원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의 임원은 이사자아 김옥영, 부이사장 김금선, 서기
최의숙, 원장 김점향, 이사 이도금, 김점득, 조운선, 김현신,
이일순, 다인권 장로 부인으로 제72회 경안노회(62.11.27~30,
안동 동부교회)에 보고되고 있다.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 서부교회)에서는 안동 선교부 반피득 선교사가 성노원
이사 2인 파송을 청원하였는데 부노회장 김진호 씨 1인만
이사로 결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제56회
경안노회(54.11.30~12.4, 안동 동부교회)에서는 성노원에
2명이 수용되고 있고, 선교부의 보조로 지내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서는 성노원장 조운선
씨가 집공사비로 891,000원을 지출하였는데 안동선교부,
인디아나 미국교회 여전도회, 인도국 데라뜬 여전도회,
미국본소 여총무, 성노원 내에 여섯 사람, 여전도회 지방회,
안동교회, 안동동부교회 애린병원, 경안여전도회 연합회의
보조와 낡은집 판 값으로 충당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노회
부서로 재단부가 있어서 노회 재산을 관리하여 왔는데 제46회
경안노회(49.11.29~12.2, 안동교회)에서 거노회적으로 재단이사로
임학수, 강석진, 김진호, 김우일, 김광현, 박두창, 이석진,
이홍구, 김태두 제씨, 감사 이원영, 김기한 제씨를 선정하였으며
제49회 경안노회(51.5.8~10, 영주읍 교회)에서는 「본 노회
관내에 각 교회 재산을 경안노회 유지 재단 이사회가 그
목록을 속히 수합하여 유지 재단을 만드는데 힘쓰기로」가결하였다.
제53회
경안노회(53.5.7-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재단 이사로 김광현,
임학수, 이원익, 오승연, 강석진, 김진호, 이홍구, 김성억,
권중찬 제씨가 선정되어 이사장 김광현, 부이사장 김진호,
서기 오승연으로 조직 보고 되었으며,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감사로 이원영, 박충락 제씨가 선정되었다.
제55회
경안노회 임시노회(54.6.14,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교회
토지급, 건물 재단법인 등기의 건은 다음 노회시까지 완료하되
재단 이사장과 각 시찰장에게 위탁하여 추진하기로」가결하였다.
경안노회
유지 재단이 모태가 되어 영주에 영광학원, 안동에 경안학원이
설립된 사실은 전술한 바와 같다.

1.
경안 모자원 설립
제52회
경안노회(52.11.25~28, 안동교회)에서는 반피득 선교사가
제의한 자매원(姉妹院)은 노회기관으로 설치하기로 하고
이사로 김진호, 김광현, 이원영, 반피득, 강경봉, 김재성
제씨를 선정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불쌍한 과부들을 돌아보아
줌을 목적으로 안동에 설치하여 경안노회에서 경영한다」는
경안 기독 자매원 현장이 채택되었다.
제53회
경안노회(53.5.5~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종전 이사회는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자매원장 김재성 씨의 이사 1인 파견
청원을 허락, 임학수 씨를 선정하였고,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자매원 경영은 후생부와 임원회에
일임하였는데 김재성 장로가 중심이 되어 안동시 광석동
현 콘티넨탈 여관 자리에 있었던 자매원은 안동시 화성동으로
가져가 개인이 경영하는 고아원인 신행원으로 발전하게
되고 자매원의 정신은 계속 이어나가 김부한 집사가 중심이
되었던 묘자원이 설립되게 된다.
제55회
경안노회 임시노회(54.6.14.13시,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
자매원 이사로 이동창, 오승연, 조운선, 우열성, 이홍구,
임의봉, 권옥영, 김점득, 김광현, 총무 김부한, 원장 조운선
제씨로 가결하고 헌장 제정등은 이사회에 일임하기로 하였다.
제56회
경안노회(54.11.30~12.4, 안동동부교회)에서 경안 모자원(母子院)
원장 조운선 씨가 「노회의 다대한 후원으로 날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고하고 결원이사 1명 보선 청원하니 김학준
씨를 선정하였다. 여기서 자매원이란 명칭이 모자원으로
변경된 것을 알 수 있고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 보고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개
원 : 1954년 6월 1일
재단인가 : 1955년 2월 28일
시설인가 : 1955년 12월 15일
자립 회원수 : 모 15인, 아동 35인, 합 50인
현재수용인원 : 모 51인, 아동 73인, 합 124인
교육상황 : 국민학생 남 23인, 여 25인, 합
48인
부대사업 : 안동 전쟁 미망인 원산장(援産場)
운영
경영방침 : 재단수입과 국가보조와 메노나이트
보조에 의함
1954.6.1~1957.10.31 총수입 3,865,516원 중
선교부보조금 : 2,462,700원
정부보조금 : 588,319원
반피득선교사보조금 : 132,000원
재단수입금 : 266,000원
사업수입금 : 138,950원
제
66회 경안노회(59.11.24~27, 안동동부교회)에서는 모자원
이사로 임학수, 이동창, 김학준, 임의봉, 김기수, 우열성
선교사 부인, 설의돈 선교사 부인, 김부한 제씨를 보선하였다.
2. 경안 신육원 설립
제52회
경안노회(52.11.25~28, 안동교회)에서는 고아원 설립 위원장
이원영 씨의 설립보고가 있었고 명칭은 경안 신육원으로
하고 이사로 강석진, 이원세, 반피득, 이홍구, 임의봉 제씨를
파송하였으며 크리스마스 연보 중 일부를 고아원으로 각
교회가 보내주기로 가결하였다.
제53회
경안노회 임시노회(53.6.3.14시, 학가산 하서루)에서 경안
신육원 정관을 심의하니 이사 7명 중 6명은 노회에서 선출하고,
원장은 위임이사로 하고, 해산은 이사 전원의 결의없이는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 「원장 김진호, 원아수
남 66, 여 40 계 106명, 원사 건물과 대지 117평, 와가2동,
초가 10간 2동으로 1954년 2월 20일 재단설립 인가 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서는 「원아 중 취학
상황 고3, 중19, 국32, 양재학원 2, 성경부락부 43, 계101명이고,
원아는 5세이하 8명, 10세이하 18명, 15세이하 54명, 20세
이하 41명 계 122명으로 앞으로 자립할 목적으로 농토 약
20두락을 가지고 자경으로 자족합니다」라고 보고하였고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제일교회)에서는 「신육원
수용 원아수가 남 75, 여 46, 계 121명에 이르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3. 영덕 보통성경학교 설립
제46회
경안노회(49.11.29~12.2, 안동교회)에서는 「영덕 지방에
보통성경학교 설립 허가 청원」이 있어 허락한 바가 있고
제47회 경안노회(50.5.9~10, 안동교회) 시에 영덕시찰 위원장이
성경학교 상황을 보고하였는데, 「기간은 3개월 간, 직원은
원장 김우일, 강사 본 시찰내의 교역자이며 학생은 약 30명,
경비는 약 40만원 후원회비로 충당한다」고 되어 있다.
영덕
지방은 경안노회에 속하여 있었으면서도 안동과는 거리가
먼 관계로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 공부 할 수 없는 지방
청년들을 모집하여 영덕읍 교회에서 단기 성경학교를 운영한
것이다.
6·25동란으로
영덕읍 교회 부속 건물이 전소되어 1951년도 춘기 개교는
무기 연기한 것으로 제49회 경안노회(51.5.8~10, 영주읍
교회)에 보고 된 바가 있으나 그 이후 복구되어 성경학교를
꾸준히 계속하여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는
「영덕보통성경학교, 기간 1954.1.20~3.8, 학생 57명, 직원은
강우근 외 교사 5명」으로, 제57회 경안노회(55.5.3~5,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기간 1955.1~2월, 학생 남녀
57명」으로, 제60회 경안노회(56.11.27~29, 영주 동산교회)에서는
「학생수 50여명, 금년 1회 졸업생 약간명 있음」으로,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서는 「영덕성경학교
매년 계속 개교 중 1957년 49명의 학생을 2개월간 교수하였으며
제2회 졸업생까지 내었다」고 보고하였다.
이후에도
영덕 보통성경학교는 착실히 추진되어 이 학교 졸업생들이
교회의 중진이 되었음은 물론 많은 교역자가 배출된 것으로
안다.
4. 기타 교육기관
제53회
경안노회(53.5.5~7, 안동 서부교회)에서는 호명면 고등공민학교
이양 청원건은 받기로 하고 이양받기 위해 유지재단 김광현
이사장과 반피득 목사를 파견하기로 하였으며 남시찰장
이영환 씨는 「삼분교회에서는 삼성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150여명과 선생 5명으로 종교교육을 기본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는 동편시찰 보고 중「주곡교회와
발리교회는 각각 중학원을 설립하여 복음과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나와 있으며, 제56회 경안노회(54.11.30~12.4,
안동 서부교회)에서는 안동 선교부 동사 목사 조종술 씨의
대한 소년 성격 구락부 사업 보고를 받았고, 제57회 경안노회(55.5.3~5,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호명중학교장 김진호 씨가 「중학교
건축 공사가 미 8군단 원조 물자로 건축하다가 중단된 데
대하여 선교부에 청원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그 일을 계속하도록
하여 달라」는 청원을 선교부에 의뢰하여 현장을 조사하고
미군 관계 당국에 교섭하기로 결의하였고, 동편시찰은 「신성중학
재단인가 신청중이고, 주곡교회와 발리교회 중학원은 난관을
돌파하고 무산 아동들에게 복음 중심 교육을 실시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제61회
경안노회(57.5.7~9,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유치원과
구락부는 예배당 내에서 하는 것이 옳지 않으므로 금후부터는
예배당 내에서는 하지 않기로」가결한 바가 있다.
1.
기독 청년 면려회
1921년
2월 5일 안동교회 기독청년 면려회(Young Peoples Society
of Christian Endeavor)가 안대선(W.J.Anderon) 선교사의
주선으로 당회의 허락을 얻어 한국 최초로 조직하게 되어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1921년
6월 7일, 안동교회에서 30여 지회를 하나로 묶어 경안지방
연합회가 조직되고 이어서 1924년 12월 2일 서울 피어선성경학원에서
기독 청년 면려회 조선연합회 창립 총회 및 제1회 전선대회를
가진 후 활발히 전개되었다.
기독
청년 면려회가 주장하는 표어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For
Christ and the church)」였고 3대 주의는 「1.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자. 2. 정직한 내가 되자. 3.사람에게 신의를
지키자.」이고 4대 주장은 「1.쉬지 않고 나를 교양하자.
2. 나의 교회를 도와주자. 3.방방곡곡에 전도하자. 4.외지
전도에 힘쓰자」였다. 그러나 1938년 5월에 일본제국주의의
박해로 기독 청년 면려회는 해체되는 비극을 갖게 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초교파적으로 조선 기독 청년 동맹이 조직되었다가
1949년 7월 7일 서울 새문안 교회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기독 청년회 전국 연합회 총회가 열리게 되고 1954년 4월
22일 제5차 전국 연합대회가 한국 면려운동의 개척지인
안동교회에서 개최되었고 1958년 5월 27일~29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제9차 전국대회 겸 총회가 개최되었고 발전적으로 고등
면려회(C.E), 청년 면려회, 장년 면려회로 분할하게 되었다.
해방
후 전국 연합회를 위하여 일한 경안노회의 인물은 제5회
총회(54.4.22, 안동교회)시에 부회장 조종술, 협동총무
반피득, 제6회 총회(55.4.21, 서울 승동교회)시에 회계
김인한, 제7회 총회(56.9.20, 서울승동교회)시에 부회장
김인한, 회계 권영무, 제8회 총회(57.7.8, 부산 광복교회)시에
회장 김인한, 협동총무 설의돈, 재정위원장 권영무, 제9차
총회(58.5.27~29, 서울 영락교회)시에 장년 C.E.부회장
김인한, 통합측 총회(60.11.15, 영락교회)시에 장년 C.E.회장
김인한 회계 권영무 씨로 중앙의 일을 경안노회 청년 면려회가
많이 감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제40회
경안노회(46.6.4~6, 안동교회)에서는 청년부(면려부)를
설치하고 청년사업을 지도하기 위하여 부장 김진호, 서기
이종국, 회계 신현상 제씨를 선입하였으며 관하 각 교회는
빠짐없이 기독 청년회를 조직케 하였다.
제56회
경안노회(54.11.30~12.4, 안동 동부교회)에서는 기독 청년
면려 연합회 경안 연합회장 조종술씨의 사업 보고 중 「기독
학생 면려 연합회 조직을 지도 협조하였다」고 되어 있다.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서는 「총회 면려부
지시 공문에 의거 1957년 11월 25일 제10회 정기 총회에서
장년, 청년 면려회가 조직 개편하였는데 장년 면려회 새
임원으로는 회장 권영무, 부회장 이언복, 신은오, 장세진,
총무 김요헌, 서기 이근영, 부서기 이수린, 회계 이호관,
부회계 오상익 제씨가 선임되었다」고, 「1957년 11월 21~25일,
안동교회에서 면려청년회 수양대회를 개최하고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보고하고 있으며 아울러 매년 10월 첫주일을
장년 면려회 주일로 지켜 주기를 청원하였다.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제일교회)에서는 「1958.4.5
고등성경학교 광장에서 장년 C.E. 주최로 부활절 촛불예배
거행, 10.5 안동교회에서 전국 연합회장 순회 강연회 개최,
11.21~25, 영주제일교회에서 청·장년 C.E. 수양회 개최(강사
강신명 목사), 58.1.14 안동교회에서 청년 C.E.주최 음악대회
개최, 10.9~13 안동교회에서 경중, 경안 연합 청년 C.E.수양회
개최, 8.19~23 안동교회에서 경중, 경안 연합 학생 C.E.
수양회 개최」하였다고 보고 하였다.
제65회
경안노회(59.5.5~8,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장년 C.E.
경안연합 회장 강신학 씨가 「10월 첫째 주일 낮 예배는
장년 C.E. 주일 예배로 경안노회에 속한 제교회가 지켜
주기를」청원하여 허락을 받았다.
1959년도
장년 면려회 경안 연합회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 장 : 강신학 부회장
: 이언복 장세진 유응종
서 기 : 강병도 부서기
: 이근영
회 계 : 신도선 부회계
: 김요헌
총 무 : 김요헌
또한
청년부장 김원진 씨의 보고를 보면 「1959년 3월 26일,
안동교회당에서 학생 C.E. 연합 총회를 개최하였나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때 선임된 고등학생 C.E.경안 연합회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
장 : 김정락 부회장 : 유영진
서 기 : 김영오
회 계 : 김윤기 부회계
: 이성해
총 무 : 강정길 박영길
2.
경안 장로회 창립
제65회
경안노회(59.5.5~8, 경안성경학원)에서는 장로회 회장 이종국
씨의 장로회 조직 보고건에 대하여 「장로들의 친목 기관으로
인정하되 경제권은 불허한다」로 결정하였다.
1959년도
경안 장로회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 장 : 이종국 부회장 : 김재성
장영락
서 기 : 장세진 부서기 : 서재현
회 계 : 이동창 부회계 : 권태교
회칙에
보면 「제1조(명칭) 대한 예수교 장로회 경안노회 장로회라
칭한다. 제3조(목적) 본회는 장로의 사명을 자각케 함으로써
장로들의 신앙 향상과 기독교적 인격을 높이며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회원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교회와 사회에 봉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1989년에 발간된 경안노회 장로회 장로 총감의 역대
임원 난에서 장로회 창립을 1966년으로 한 것은 사실과
7년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3. 주일학교 연합회 조직
제53회
경안노회(53.5.5~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종교 교육부장
김광현 씨가 「주일학교 연합회 조직의 건은 허락함이 좋은
줄 아오며 조직에 관한 제반 사무는 종교 교육부에 위임하여
주기를」청원하여 허락되었다.
1957년
8월 6~9일, 제1회 경안주일학교 대회를 풍기 동부교회에서
개최하여 설교대회, 음악대회, 주교 시범 대회를 다양하게
가졌으며, 주교 교사 강습회는 주일학교 교수법 김윤식
목사, 종교교육 박중철 목사, 종교음악 소규천 목사, 아동심리
신현흡 선생 담임으로 특수한 은혜속에 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 제일교회)에서 주일학교 연합회장
최영두 씨는 「1958년 7월 28일~8월 1일, 춘양교회에서
주교교사 강습회 및 주교대회를 가졌는데 70여명 수강,
강사는 김상한 김기수 이영환 제씨이고, 주교대회는 동요대회
반사 동화대회 주교 시범대회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4. 부인 전도 연합회
경안노회
부인 전도 연합회는 1928년에 창립된 역사 있는 모임임에도
해방 후 1959년 사이에는 노회에 특별한 보고 사항이 없어
그 활동상을 파악하기가 어렵고, 노회에서는 부인 전도
연합회를 위하여 경비를 보조하여 준 것은 나타나고 있으며
경안 성노원을 운영하기 위하여 협력한 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1959년도
경안노회 부인 전도 연합회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 장 : 권옥영 부회장
: 김현신
서 기 : 최의숙 부서기
: 이금석
회 계 : 전후숙 부회계
: 김점향
전도부장 : 고순희
사경부장 : 김세옥
총 무 : 이도금 김금선
협동총무 : 조운선 선교사
5. 전도사회
경안노회
전도사회는 1958년 11월 26일 창립되었고,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제일교회)에서 전도사회 조직 청원이 허락되었으며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
장 : 권석표 부회장 : 김요헌
서 기 : 이강한 부서기
: 이금석
회 계 : 김기한
총 무 : 김충효
지방부장 : 김금선
사교부장 : 김선옥
교육부장 : 장성덕
1959년
8월 15일, 전도사회에서 주왕산 교회를 설립하였다고 하며,
제66회 경안노회에서(59.11.24~27, 안동동부교회)에서는
전도사회장 김요헌 씨의 경과보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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