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일날 총선거 반대운동 전개

  1948년 5월 9일(주일)이 남조선 총선거일로 결정됨에 교회들이 당회를 여는 등 모임을 갖고 주일이 아닌 다른 날로 선거일을 변경하는 운동을 전개키로 하고 만약 불응시에는 총 기권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렇게 운동을 전개한 결과 5월 10일(월)로 변경하여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 감시하에 첫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2. 국기 배례의 여부 관계 

  해방 후 국가 의식을 갖는 데 있어 국기에 대한 경례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고 사회문제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지 않는 학생은 수업을 받지 못하게 하고 집으로 돌려 보내기까지 하였고 어떤 국민학교에서는 퇴학시킨 예도 있었다고 한다.(김수만 장로 따님의 경우)

  제42회 경안노회(47.4.8~11, 안동교회)에서는 국기 배례의 여부를 총회에 문의하기로 가결한 바가 있으며, 이원영, 김광현 양씨로 하여금 노회 대표 명의로 「주목례」로 시정토록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제출케도 하였다. 이 운동은 전국적 운동이요, 전국 교회가 동일 보조로 반대하는 일이라 정부에서는 대통령령으로 국기에 대한 주목례를 하도록 시정하였다.

     3. 문맹퇴치 운동 전개

  일제 탄압으로 정규 교육은 물론 우리 글인 한글을 교육 받지 못한 문맹자가 너무도 많아서 해방 후 야학 등의 방법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한글 계몽 사업이 활발히 전개 되었는데 이 일에 교회들이 앞장섰다.

  제46회 경안노회(49.11.29~12.2, 안동교회)에서는 기독교 교회 협의회(N.C.C) 산하 단체로 선교사들이 후원하여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하는 계명 협회의 일을 감당하도록 권찬영 선교사 외에 시찰별 1명, 동편시찰 박충락, 서편시찰 황병혁, 남편시찰 김형칠, 북편시찰 이석진, 중앙시찰 김진호, 봉화시찰 이재회, 영덕시찰 남주석, 강원시찰 이성찬 제씨를 선정하였다.

     4. 새벽 타종 사건

   1954년 8월 20일 새벽에 당시 동부지구 경비사령부 사령관 겸 안동 위수 사령관 김응조 소장이 밤늦도록 음주 후 새벽에 사택에서 잠들려고 하는데 안동교회에서 종을 치니 화가 나서 김광현 목사 사택에 찾아왔다고 한다. 마침 포항 북부교회에서 개최되는 계성 하령회 집회 인도차 새벽에 나서는 김광현 목사의 뺨을 쳐서 오른쪽 고막이 터지게 하였고 나중에 장군이 목사보고 자기를 때리라고 하기에 김목사는 화해하는 의미로 모자를 벗게 하고 두차례 세게 때리니 분해하면서 사병 2명을 보내와 문제를 삼으려고 하다가 그 후에 사과를 해왔다고 한다. 이 일로 교회들이 초교파적으로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보낸 사실이 있고, 그 후 김장군은 강원도 삼척지방으로 전근이 되었다고 한다.

      5. 군목부 지원 

  제53회 경안노회(53.5.5~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덕봉교회 오동회 전도사가 군목으로 입대하였다는 남편시찰 보고가 있었고,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군목과장 박치순 씨가 권오현 씨를 목사로 안수하여 보내달라는 청원을 허락함과 동시에 성탄선물을 모집해서 군부대에 보내주기로 하였다.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는 총회 군목위원장 안광국 씨가 김태동 씨를 목사 안수해 달라는 청원을 허락했고, 군목감실장 박치순 씨가 청원한 김기웅 씨를 군목안수해 달라는 청원은 강도사로 인허하였다.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제일교회)에서는 군목위원 5인을 두기로 하고 박중철, 남주석, 안승락, 주병호, 권신찬 제씨를 선정하였고 군목위원회를 조직하니 위원장 박중철, 서기 남주석, 위원 3인이었다.

 

   1948년 9월 28일 ~ 10월 1일, 제45회 경안노회가 영덕읍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수양회를 겸하여 회집되었기 때문에 안동교회 제2대 목사였던 이대영 목사가 강사로 초빙되었다. 노회 마지막 날은 강구교회로 옮겨 집회를 계속하였는데 강사와 친분이 있었던 안동교회 교인들이 수양회에 참석중이었다.

   10월 1일 오후 3시경, 바닷가에 나갔던 사람들이 호기심에 배를 탔는데 멀리 나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배가 뒤집혀 4명이 조난을 당했다. 노회록은 이 사건을 「해상참변으로 정회하다」라고만 기록하고 있어 조난자의 신원이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노회원 중 목사 2명, 여전도사 1명, 신도 1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날 조난당한 장재석 목사는 내성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고 소호·국곡·양처 교회 담임목사로 시무중이었고, 노회 종교교육부장을 다년간 맡고 있는 중이었고, 면려부원 남편시찰장 경안고등성경학교 이사를 감당하고 있던 유능한 분이었고, 박기환 목사는 내성교회 담임목사로 노회의 시취부원이었고, 임재수 전도사는 풍기교회를 시무하는 여전도사였고, 김미순 집사는 안동교회 여집사로 재력이 있어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크게 영향력을 가졌던 봉사자로 길이 기억될 분이었다.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장소를 안동으로 청원하자는 논의가 제의되자 안동도당회가 모여서 의논한 결과 합의되어 총회에 청원하기로 가결되었다.

   제55회 경안노회(54.3.23~25, 춘양교회)에서는 총회 환영 부담금을 10만환으로 결정하되 5만환은 도당회가 책임지고, 5만환은 각 시찰별로 부담하기로 하였다.

   1954년 4월 23일~27일, 제39회 총회가 안동교회에서 열리게 되고 잘비스 박사의 부흥집회를 동시에 하게 되었는데 잘비스 박사의 설교, 한경직 박사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안동총회의 특색을 들면 ①총회장에 본노회 출신이요 안동서부교회 당회장 이원영 목사께서 피선되었고, ②1938년 제27회 총회(1938.9.9.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데 대하여 총회적으로 참회하는 입장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는 결의를 한 것이라 하겠다.

   1959년 9월 28일, 대전 중앙교회에서 열린 제44회 총회에서 안동교회 당회장 김광현 목사가 임원으로 서기 겸 총무에 피선되어 교파 분열이 있었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총회 임원회와 화평 위원회 등으로 참석하면서 총회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제52회 경안노회(52.11.25~28, 안동교회)시에 본 노회 창립 30주년 기념식 겸 교역자와 장로 30주년 시무 근속표창식을 11월 27일 오후 7시에 거행하였는데 표창자는 다음과 같다.

  교역자 : 강석진 41년, 강우근 37년, 정주복 35년, 임학수 34년, 김종숙 33년
  
전도사 : 민태규 37년, 이주한 32년, 이중무 30년
  
장   로 : 박영달 34년, 이주애 31년, 우연석 31년, 배영찬 30년



   
1.김영옥 목사

   김영옥 목사는 1871년 4월 12일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부소미리에서 출생하여 그의 나이 9세 때에 청송 심씨와 결혼하였다. 일찍이 평산 이승만 서당에서 공부했고 한국 최초의 교회라고 하는 송천교회에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초대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1893년 선교사 마포삼열의 조사로 서울에서 가두전도를 시작하여 경기도 동부지역 양주, 포천 등지에서 전도생활을 하다가 1899년에 선교사 웰번(A.G. Welbon)을 따라 강원도 지역에서 교역생활을 하였고, 1910년 강원도 지역이 감리교 구역으로 바뀌어짐에 따라서 웰번 선교사와 함께 안동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성격이 깔끔하고 능변에 뛰어난 재질을 가졌던 김영옥 목사는 1911년 6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제4회), 경안노회내 최초의 한인목사로 안동교회 초대목사가 되어 1911년 9월 부임하여 1921년 1월 31일까지 담암하면서 웰번 선교사와 함께 동사목사로 시무하면서 창립당시의 갖은 어려운 여건을 잘 극복하면서 교회 체체를 정비하였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6개월간의 옥고 생활을 치룬 바 있다.

   1919년 경북노회정으로 피선된 바 있고, 경안노회가 경북노회로부터 분립하여 1921년 12월 20일 경안노회가 조직됨에 초대 경안노회장이 되었다. 그 후에도 제 18회 경안노회(1930.12.16)에서 2차, 제28회 경안노회(1935.12.16)에서 3차로 노회장직을 맡았고 1930년에는 영주교회를 시무하였으며, 1940년 1월 안동교회 제6대 목사로 1942년 12월 31일까지 시무하였고, 말년에는 경안지역 농촌 작은 교회들을 돌보았다.

   제45회 경안노회(48.9.28~10.1, 영덕읍 교회)에서는 김영옥 씨를 공로목사로 추대하고 월 5천원씩 사례하기로 가결하였다. 1952년 김영옥 공로목사가 제상을 떠난 곳은 그의 장손 김형칠 목사가 시무하던 의성 삼분교회였다.

그의 장자 김은석 목사를 비롯하여 손자 김형칠 목사, 김형태 목사는 모두 우리교단 출신이다.

제51회 경안노회(52.5.6~9, 경안고등성경학교)시에는 공로목사 고 김영옥 목사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묵도.............일동
   찬송.......117장.....김경동목사
   성경봉독.....눅 16:19-30..........이원영 목사
   설교.............낙원....................회장 이원영 목사
   조가독창.................................현인덕 전도사
   약력낭독.................................김기한 장로
   추도사.....................................임학수 목사
   조위금.....................................전달김진호 목사
   답사.........................................유가족대표 김형철 목사
   기도.........................................김종숙 목사
    

   2. 이원영 목사

   봉경(鳳卿) 이원영 목사는 1886년 7월 3일 안동군 도산면 원천동에서 이관호 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여 20세 때 경주인 김한제 씨의 장녀 김기출 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6녀를 두게 되었다.

   그는 한국의 대학자 이퇴계의 14대 손이요, 한학에 조예가 깊은 부친 밑에서 그의 나이 10대 시에 사서오경을 통독했고, 1908년에 봉성측량 강습소와 1911년 보문 의숙을 졸업했다. 이로써 구 한문 외에 새 문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새시대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터지자 도산면 다수 종족 중에서 단신 솔선하여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위국충의의 불굴의 정신으로 일제에 맞서다가 그들에게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간 복역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기독교 애국자들과 접하게 되었고 특히 동향 안동출신 이상동 장로에게 직접 전도를 받아 기독교 신자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출옥 후 1921년 1월 8일 세례를 받았고, 섬촌교회(剡村敎會)를 설립하였으며, 1925년 안동성경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3월 12일 평양신학교를 졸업(제25회)하고, 1930년 6월 12일 영주중앙교회 강도사로 시무했다.

   1930년 12월 18일 목사안수를 받고, 1931년 인노절 기념 성경학원 교사, 1932년 12월 안기교회(안동서부교회)와 신세교회(안동동부교회)를 시무하던 중 제24회 경안노회(1933.12.19)에서 경안노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38년 12월 6일 신사참배 반대로 목사 시무를 중지당하고 1939년 5월 31일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혹독한 체형에도 한사코 거절하여 숭고한 신앙정신을 굳게 지키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1941년 7월 건강회복 후 안동 일경에 다시 구금되고 그 이후에도 3차, 4차 구금되어 해방으로 출감하여 교회를 순방, 속화된 신앙을 정화하고 부흥운동에 열중하였다.

  제39회 경안노회(1945.11.20)에서 경안노회장으로 2차 피선, 1946년 6월 22일에 안동서부 교회를 시무하면서 1946년 9월에 경안고등성경학교를 설립하고 초대원장으로 취임하여 많은 교역자를 길러 냈으며, 제41회 경안노회(46.12.10)에서 경안노회장으로 3차 피선, 제50회 경안노회(51.11.27)에서 4차, 제54회 경안노회(53.11.24)에서 5차로 피선되었고, 1953년에 안동서부교회 2층 석조 예배당을 준공시켰으며, 1954년 4월 23일 안동교회에서 개최된 제39회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이원영 목사는 1955년 11월 23일 발병, 1956년 4월에 경안고등성경학원에서 명예원장으로 추대되었고, 제62회 경안노회(57.11.26~29, 안동교회)에서 경안노회 공로목사로 추대되어 추대식이 거행되었다.

  묵도.....................일동
  찬송....283장.......일동
  기도.....................오승련 목사
  성경.....................민병훈 목사
  설교.....................임학수 목사
  추대사.................노회장 김광현 목사
  기념품 증정.......서기 김윤식 목사
  찬송......1장.........일동
  축도로 폐회

   1958년 6월 1일 안동서부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되었고,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제일교회)에서 원로목사 청원이 허락되었다. 1958년 6월 21일 오전 8시 향년 73세로 별세하여 6월 27일 경안노회에서 노회장(老會葬)으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이원영 목사의 독자 이요한 씨는 미국 L·A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 김종숙 목사

   김종숙 목사는 영양 당동 출신으로 법전 척곡교회에서 결신하고 집사가 되었으며, 춘양교회에서 조사로 20여년 시무하던 중 제40회 경안노회(46.6.4-6, 안동교회)에서 춘양·척곡·양처교회에서 연봉 13,800원에 위임목사로 청원하여 허락되었고, 노회중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김종숙 목사가 목사안수를 받게 된 것은 특별한 경우로 「60세 이상되고 교역자로 30여 년 시무한 분에게 검정없이 노회 결의로 목사 안수를 하였다」고 하는데 정주복 목사가 다음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 이 제도는 남용의 여지가 있어서 문을 닫았다고 한다.

   김종숙 목사는 아주 존경받는 목사였다고 하며 제41회 경안노회(46.12.10-14, 영주읍교회)시에 시취부장으로 활약하였고 제52회 경안노회(52.11.25-28, 안동교회)시에 경안노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교역자 33년 근속시무에 대한 표창을 받았고, 노회 공로 목사로 추대하기로 가결하였으며 제53회 경안노회(53.5.5-7, 안동서부교회)시에 공로목사 수여식이 거행되었다.

   강석진 노호장이 찬송 348장을 김형칠 목사로 인도 합창케 하고 김진호 목사가 기도하다. 노회장이 성경 딤후 4장 7~10절을 봉독하고 「선한 싸움」이란 제목으로 설교한 후 춘양교회 최영두 장로께서 약력을 보고하니 회장이 공로목사증을 수여하다.

   본 노회와 봉화시찰과 춘양교회에서 각각 축품이 진정된 후 김진호 목사, 민병연 목사, 최영두 장로, 최성숙 장로가 축사하고 김종숙 공로목사의 답사가 있은 후 찬송 1장을 합창하고 회장의 축도로 마치다.

   김종숙 공로 목사는 그 후 봉화에서 별세하였고, 장자 김운학 씨는 국민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별세, 장손 김영성 씨는 인하 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정년퇴직하였다고 한다.

   1.기념식

   경안노회 선교 50주년 기념식이 1959년 10월 3일 안동교회에서 거행되었다. 특히 이날 희년설교(禧年說敎)는 한국 선교 75주년 기념식에 국빈으로 미연합장로회 외지 전도부를 대표해서 온 그레이스 박사가 성경 고전 1:18~2:5을 가지고 설교하였고, 선교본부 및 선교사들에게 감사장증정과 믿은 지 50년 이상된 자, 재직시무 40년 이상된 자, 장로시무 30년 이상된 자, 교역시무 30년 이상되 낮에게 표창하는 등 다채로운 순서를 가졌다.

경안노회 선교 50주년 기념식순                                                사회 : 노회장
주악................................................................................................일동
찬송.............................................................................................성가대
기도......................................................................................박충락 목사
성경.............................고전 1:18~2:5.....................................김성억 목사
찬양.................................시온아!이 소식 전하라........................연합성가대
설교...................................................................................그레이스 박사
독창......................................................................................최선혜 선생
식사.............................................................................................사회자
감사장진정....,,,...........................선교본부에게.........................강경봉 장로
                                               역대선교사에게........................정주복 목사
                                              선교사후예에게.........................오승련 목사
                                             현임선교사에게.......................권옥영 전도사
표창장진정................믿은 지 50년 이상 되신이에게.....................우열성 목사
                               재직시무 40년 이상 되신이에게...................장여락 목사
                               장로시무 30년 이상 되신이에게...................박중철 목사
                               교역시무 30년 이상 되신이에게...................설의돈 목사
회고담........................................선교사 중에서........................옥호열 목사
                                                 노회원 중에서........................임학수 목사
축사........................................관계를 대표하여............................안동군수
                                              타교파를 대표하여...................구세군지방관
축전축문.......................................................................................노회장
답사.........................................선교회를 대표하여.........................리틀박사
                                                  노회를 대표하여.....................김진호 목사
찬양.................................................주의 영광..........................연합성가대
인사 및 광고.............................................................................이동창 장로
찬송............................................548.................................................일동
축도..............................................노회를 위하여.......................반피득 박사
                                                선교회를 위하여...............................노회장

   2. 표 창

  경안노회 선교 제50주년 기념식전을 가장 빛나게 하여 준 것은 표창 순서였다. 표창받은 분들의 명단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믿은 지 50년 이상된 자
강복영  신을선  이인홍  김점향  임상경  장경영  신화수  홍재동  정양조  김재성  이병규  박우매  
천분선  김성림  강대현  강신덕  전종술  손봉희  박계남  정성이  배유조  손춘봉  이금선  윤응도
조은희  김분이  이두일  안주봉  강순이  장계수  김정숙  홍재신  권극성  김금이  김재영  권만두
최상익  김귀홍  신현택  김일재  최영화  이갑원  김태운  김철원  이주한 권순옥  김진호  신소연
김영규  이도금  김봉목  배중기  배영찬  권인수  윤석임  김귀남  이이일  손석금  권수필  서원절
김태봉  박순녀  박화송  권석필  권성필  최놈이  권진호  권극선  이갑순  이봉기  남연조  최병찬
김대규  이히서  권이임  최상균  백우준  권계임  김오남  이주예  정주복 최연근  김월이  오주연
권도윤  김수석  최영은  이성학  장사익  김대규  권도연  금용문  최상균  양순임  금용무  강오남
안이규  박승연  강도분  김동출  소병옥  천영근  김필묵  이도연  김쌍인  강대영  김분홍  이주범
이종섭  김병규  금순교  양재옥  김계옥  김우일  유어곡  임용규  강석리 강석영  강봉순  김영숙  
박  분   강석경  김만규  강석호  최동찬  김계연 최영화  조원존  임조동  강석화  강석중  강석규
강석대  김현신  홍  례   이간천  권신희  강수이 유정열  강병태  김옥순  정수국  김수갑  강용구
김수천  강대은  김옥순  우성찬  강대덕  박도순  손소생  신만금  김도화 정순향  조록전  강병철
홍성애  장선기  고승환  김창수  이계수  이중화 신재운  강봉희  이종국  서주생  장진섭  신기현
김소정  이계화  강봉희 김월심  권경생  이윙범  김분이  김병규  김남이  구윤근  김천생  송두성
신복기  김화영  백낙선  이주범  강진홍  강국향  권중찬  김수의  강만순 박등불  황병오  금순교
양재정  임응섭  김천생  오중기  손영진  김수연 김달용  김석창  주병호  김진실  박덕용  노태식  
채식상  김태상  김순근 이점순  박호철  박위락  김정녀  윤계식  우규진  최영화  양분도  이오이
강을록  이오복  박순이  김봉순  하남이

   
2) 교회직분 재직 40년 이상된 자
신재균  신재순  주병호  고승환  우규진  김소점  임응섭  황병호  이주여  김진홍  김수갑  김주갑

  3) 장로 시무 30년 이상된 자
신현상  유재만  고승환  최이연  신현택  우연석  이갑원  김용규  배영찬

  4) 교역 30년 이상 시무한 자
강석진  정주복  김병규  김성수  이주한  김정숙  강진홍  강병철  안주봉  임학수  김진호  김금이
 

   3.경안노회 회보발간
  
  
경안노회 선교 제50주년을 기념하여 경안노회 교육부에서 「경안노회 회보」를 1959년 12월 10일자로 창간하였는데 권두언, 창간사, 경안노회 약사, 서교50주년 개관 안동선교사와 인터뷰, 신앙단상, 교회순방, 경안노회 역대임원 명단 등 그 내용이 충실하여 1959년 까지의 경안노회 역사를 대략 짐작케 하고 있다.

 목  차                                                         -창간호-

권두언.........................................창조적 위치............................................박중철
창간사.....................................................................................................김광현
경안노회 약사...........................................................................................김광현
교육적 선교위치........................................................................................김성억
 

특  집   선교50년기념식개요

회년설교.........................................................................................그레이스박사
역대 선교사에 감사장
                50년이상 신앙생활한 자 표창
                40년이상 직분재직자 표창
                30년이상 장로시무자 표창
                30년이상 교역한 자 표창

선교 50주년 회고담..................................................................................옥호열
선교 50주년 회고담..................................................................................임학수

축사 및 답사
선교부주재선교사와 인터뷰........................................................................편집실
                조운선 선교사
                우열성 선교사
                설의돈 선교사
신의 계시................................................................................................배흥직
칼빈의 경제관..........................................................................................권상학

신앙단상
기도의 단면도..........................................................................................김성억
예술미와 종교..........................................................................................김윤식
단풍잎을 들고서.......................................................................................박중철
신사참배투쟁기........................................................................................강병철

군소재지 교회 순회 (안동,예천읍, 서부, 영양, 동부, 제일, 영덕, 동산, 청송교회)
에큐메니칼 유모어.............................................................그레이스 박사와 박중철

경안노회 역대 임원 명단
경지도 원리.............................................................................................설의돈
기독 청년에 보내는 메시지..........................................................................김원진
노회 각 기관 순회(경안고, 영광고·성경학교, 성소병원)
부인전도연합회 임원 명단
제44회 총회 촬요
선교 50주년 기념식순
고 이원영 목사 약사
편집 후기.................................................................................................편집자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제일 먼저 1946년에 옥호열 선교사가 이곳을 찾아왔고 뒤이어 여러 선교사들이 돌아오기 시작하였으나 6.25동란으로 일시 피난하게 되었다. 피난 후 다시 많은 선교사들이 안동을 찾아와 주재하게 되었는데 선교활동의 영역은 경안노회를 ㅂㄴ피득 선교사, 경중노회를 우열성 선교사, 여전도회 활동에 조운선 선교사가 맡아서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 전파에 힘썼으며 교육사업 의료 선교 사회사업에 힘썼다.

  1. 권찬영 선교사(權燦永)목사 : John Y. Crothers)

1910년 1월 안동지역 선교사로 온 권찬영 선교사는 프린스톤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그의 신학은 유달리 보수적이었고 네비어스 정책을 누구보다도 충실히 지켜려고 애쓴 사람 중의 한 분이라고 한다. 안동교회 역대 목사와 동사 목사로, 계명학교 설립, 노회 임원을 역임하였고, 1938년 신사참배 문제와 세계평화기도문 사건에 연루되어 강제 추방당했다가 해방이 되어 내한 했으나 1950년 6·25 동란으로 일단 일본으로 피난하였다. 일본에서도 한국 교회와 재일 한인교회를 돕고, 교육 사업에 힘쓰다 1952년 정년으로 한국을 일시 방문한 후 귀국하였다.

 

  2. 반피득 선교사(반彼得 목사 : Peter Van Lierop)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벨기겐트 왕립고등학교와 미쉬간 왜인 호오프 대학을 졸업하고 그 후 피츠버그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벧골 연합장로교회 교생 목사와 제6 장로교회 목사 회보를 거쳐 1949년에 안동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1951년 1년 간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지내다 다시 안동에 와서 그가 전공한 교육학과 그리고 목사로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그의 부인과 전가족이 합심하여 노력하였다고 한다.

   1952년에 경안 식육원 설립이사, 경안 자매원 설립이사, 1953년 7월에 애린진료소를 설치, 1954년 학교법인 영광학원 이사를 역임하였고, 1953년 7월 경안성노원 설립에 공이 많다고 한다. 더욱이 1954년 경안고등학교 설립을 위한 노력은 특별하여 학교법인 경안 학원 설립 이사장으로 1954년 4월 1일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의 기초를 닦아 나가던 중 안식년을 맞아 5월 17일에 귀국하였다. 미국 체류 기간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학교 운영에 필요한 모금 운동을 벌인 바 있다고 한다.

   1955년 10월에 다시 안동에 돌아와 학교 교육에 매우 의욕적이고 헌신적이었으나 1956년 8월에 서울 연세대학으로 부득불 옮기지 않을 수 없어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제59회 경안노회(56.5.8~10, 내성교회)에서는 반피득 선교사가 본 노회에 더 유임하도록 선교부에 진정하는 등 노력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는지 제59회 경안노회 임시노회(56.8.31. 상오10시)시에 반피득 선교사의 송별식을 갖고 전별하였다.

  3. 조운선 선교사(趙雲仙 : Olga C.Johnson)

   젊은 처녀의 몸으로 이 땅에서 나서 평북·서울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48년 안동에 와서 경안고등성경학교 이사와 교사, 농촌교회 자립지원, 1954년 경안 모자원 이사 및 원장, 학교법인 영광학원 이사, 학교법인 경안학원 설립이사, 1953년 경안 성노원 설립이사 및 1957년 원장, 1957년 성소병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교육사업, 구호사업을 전개하였으며 회갑 잔치도 안동에서 하였다고 한다. 1959년에 정년으로 은퇴하고 귀국하였다.

 

  4. 우열성 선교사(禹烈聖 목사 : Stanton R. Wilson)

  1923년 9월 21일에 뉴욕주 하몬드에서 출생하여 코오넬 대학을 졸업하고 간부 후보생 학교를 거쳐 군생활을 했으며 프린스톤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선교사를 지망하여 예일 대학 극동언어학원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은 후 1953년 1월 한국 선교사로 오게 되어 1954년에 안동에 왔다.

  그는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학생회장 일을 보아온 매우 활동적인 인물로 경안고등성경학교 이사와 교사, 1954년 영광학원 이사, 학교법인 경안학원 설립이사 및 1954년 5월 20일 경안고등학교 제2대 교장으로 취임, 경안 모자원 이사를 부인과 함께 역임하였다.

  1957년 8월에 안식년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가 15개월 20일 만에 다시 안동으로 오게 되었다. 미국 체류기간 프린스톤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하였다.

   5. 마삼락 선교사(馬三樂 목사 : Samuel H.Moffett)

  1956년 안동 주재 선교사로 부임하여 1957년 1월 18일 학교 법인 경안학원 이사장을 맡아 1959년 7월 14일까지 재임해 오다가 총회신학대학 교수로 가게 되었다. 부인 민애란 여사도 경안고등학교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쳤다고 한다.

   6. 설의돈 선교사(목사 : Benjamin E. Sheldon)

  불신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대학졸업 후 신학굘ㄹ 거쳐 임시로 한국에 왔다가 상임 선교사로 허락을 받은 후 1957년에 안동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경안 고등학교에서 영어 시간을 맡아 주기도 하였고 불우한 학생 수십명을 도와 주었으며 검소한 생활을 신조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 전문 선교사이기도 하였다. 부인도 모자원 이사를 역임하였다.


  제63회 경안노회(58.5.6~8, 풍기 성내교회)에서는 선교 협의회 위원으로 김광현 오승련 양씨를 선정하였다. 경안노회 선교 협의회 대표 김광현 씨가 중앙선교협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보조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1) 전도비   개척전도(남자)500환  (여자)240환
                  청년 사업비                      160환
                  학생 전도비                   7,550환
            하기 신학생 전도               180,000환

  2) 교육비        경안학교                     450환
                       영광학교                     450환
                       성경학교                  1,725환
                단기성경학교
  농촌교회 지도자 강습회                      200환

  3) 자선비   성소병원 기구 구입비       1,000$
     (병원으로 명의 승격할 것을 뉴욕 본부에 청원하기로)
  교역자 자녀 교육비 보조                   120만환

  4) 기 타    C.E. 회관 수리비                 500$
                      성경학교원장                 400$
               성경학교 수도시설                 250$
                                  텐트              3,000$
           (구입하여 안동에 15% 배당키로)
           안동교회 증축 보조비              2,500$

   1959년에는 이제까지 내려오던 선교협의회를 재정과 인사를 관장하는 선교협동사업부로 총회가 통과시켜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고 한·미 교회가 상호 약정서를 통과하고 협동 사업부 규약을 체결하였다. 그 조직은 서울·대구는 선교사 2인·한인 2인씩, 안동·청주는 선교사 1인·한인 1인씩, 선교회 총무, 본 교단 총회 서기, 여선교사 대표 1인, 여전도회 대표1인으로 구성하였다.

본 노회 김광현 목사의 경우 처음은 안동지역 대표로 1959년부터는 총회 서기로 자동협동사업부 위원이 되어 10여년 재임하면서 중앙 선교협동사업부 서기와 회장을 역임하여 경안이 매우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고 한다.

제66회 경안노회(59.11.24~27, 안동 동부교회)에서는 선교 협동사업부 부원으로 강경봉, 김광현, 오승련 제씨를 선정한 바가 있다.


 1946년부터 1959년까지 경안노회에서 임직된 목사는 다음과 같다.

노회횟수

기간

장소

임직받은 목사

제 39회 경안노회
제 40회 경안노회
제 44회 경안노회
제 45회 경안노회
제 46회 경안노회
제 47회 경안노회
제 48회 경안노회
제 49회 경안노회
제 50회 경안노회

제 51회 경안노회
제 52회 경안노회

제 53회 경안노회
제 54회 경안노회

제 55회 경안노회

제 56회 경안노회
제 58회 경안노회
제 60회 경아노회
제 62회 경안노회
제 63회 경안노회
제 64회 경안노회

제 66회 경안노회

45.11.20-23
46.6.4-6
48.4.6-8
48.9.28-10.1
49.11.29-12.2
50.5.9-10
50.11.28-30
51.5.8-10
51-11.27-30

52.5.6-9
52.11.25-28

53.5.5-7
53.11.24-27

54.3.23-25

54.11.30-12.4
55.11.29-12.2
56.11.27-29
57.11.26-29
58.5.6-8
58.11.25-28

59.11.24-27

안동교회
안동교회
영주교회
영덕읍교회
안동교회
안동교회
영주읍교회
안동교회

경안고등학교
안동교회

안동서부교회
안동서부교회

춘양교회

안동동부교회
경안고등성경학교
영주동산교회
안동교회
 풍기성내교회
영주제일교회

안동동부교회

이성근
김종숙
강용서
정주복
최재겸 오승련
정재순
남주석  민병련
김형칠
석호인 김기팔 한영원
남수복 김경동 김정모
현경섭 권신찬
현인덕 박대규 하종택
조종술
김윤식
박승팔 박맹술 권오현
장사원(서약만)
전세훈 김태동 오덕은
김응한 민병훈 배흥직
함준규 오동희 문은식
박중철 김영환
김상한
김기응 김원진 이기형
권상학
김기수 강대호 김우호
강영창
김계한 김순조


  1. 제43회 경안노회(47.9.30~10.3, 안동교회)에서는 김재철 목사 성직 오손(제4계명을 1년 이상 위반하고 교회의 건덕상 방해로운 음주하였음)으로 권징조례 제36조에 의하여 목사 면직 수찬 정지시켰다.

  2. 제43회 경안노회 임시노회(47.11.5, 안동교회)에서는 김영수 씨를 본 노회 경내에서 부흥회 강사로나 교역자로 청빙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3. 제54회 경안노회(53.11.24~27, 안동서부교회)에서는 가구교회 하종택 목사가 노회 탈퇴성명을 낸데 대하여 제명 처분하기로 하였다. 하 목사는 1952년에 목사 임직하고 제53회 경안노회에 청년부원으로 활동한 분으로 고려파로 가게 되어 가구교회가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4. 제55회 경안노회 임시노회(54.5.7.13시,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한국 신학교에 가는 학생을 천서해 준 영주 중앙교회 안언약 목사와 풍기 북문교회 이성근 목사에 대하여 재판국을 설치하였다.

  제36회 총회에서 신조 1조에 관한 결의로 「한국 신학교와의 관계로 끊을 것」에 위반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임시 노회(54.6.14.13시, 경안고등성경학교)가 열려 재판국 별위원의 보고를 듣고 안언약 목사와 이성근 목사를 제명처분키로 하고 양교회에 수습위원을 파견하였다. 또 다시 임시노회(54.10.4.13시, 경안고등성경학교)가 열려 영주 중앙교회와 풍기북문교회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재판 수속하기로 함에 임원회(54.10.8.10시, 성경학교)를 열어 대한 기독교 풍기교회와 영주 독립파 대표를 상대로 소송하기로 하였다.

  제56회 경안노회(54.11.30~12.4, 안동동부교회)시에 북편 시찰에서는 「과거 반년간 극히 소란한 가운데도 2개처(중앙, 북문)교회는 신앙으로 굳게 이겨나가고 있으니 기도하여 달라」는 보고가 있었다.


 
 1. 제43회 경안노회 임시노회(47.11.5, 안동교회)에서는 대구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이사로 이운형 조흥로 양씨를 파송하였다.

  2. 제51회 경안노회 임시노회(52.8.12,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대구 기독교대학 설립에 대하여 부담금 3천만원을 부담하기로 하고 이원영 김진호 양씨를 과도 이사로 파송하였다.

  3. 제57회 경안노회(55.5.3~5,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신학교 이사로 이원영 박춘락 양씨를 파송하였다.

  4. 제58회 경안노회(55.11.29~12.2,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는 신학교 이사로 박충락 씨를 파송하였다.

  5. 제64회 경안노회(58.11.25~28, 영주제일교회)에서는 신학교 이사로 박충락 씨, 계명 기독대학 이사로 김광현 씨를 파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