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선교 100주년과 노회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경안노회는 꾸준히 성장해서 총대를 38명이나 파송하는 큰 노회가 되어 1982년 9월 제112회 노회에서 노회분립을 논의했다.

   1.분립을 위한 준비

   먼저 임원회와 공천부에 맡겨 김계한, 장세문, 박명서, 이경문 김충효, 이선교, 최준길, 이승일, 강대훈, 권영성, 김봉태, 한동미 김창업, 이은석, 전덕열, 우성태, 권원득, 김주한, 주용수, 조준래, 김영기, 마광수, 이정일, 박세환,으로 노회분립위원을 선정했고, 이들은 위원장 김충효 서기 주용수로 조직을 하고 분립안을 작성하여 노회에 보고했다. 그리고 1983년 9월 영주제일교회에서 모인 제114회 노회는 노회분립 준비위원장 김충효 씨의 보고를 다음과 같이 받았다.

  - 노회분립은 가장 근소한 교세로 하는 것이 좋으므로
    경안노회- 안중, 안서, 안북, 의성, 청영 시찰
    분립노회- 예천, 영북, 영남, 봉화시찰로 한다.

   
※ 교세 대비표

  
①  경안노회

순위

시찰

교회

목사

장로

전도사

세례교인수

1
2
3
4
5
계

안중
안서
안북
의성
청영

22(1)
28(8)
30(6)
25(7)
39(8)
149(39)

7
9
5
7
7
35

44(22)
50(23)
39(23)
49(24)
53(30)
235(122)

12
15
15
6
10
58

2,042
1,825
1,611
1,645
2,029
9,202


   ② 분립하는 교회

순위

시찰

교회

목사

장로

전도사

세례교인수

1
2
3
4
계

예천
영북
영남
봉화
 

39(9)
19(7)
28(4)
46(7)
137(27)

9
8
4
5
23

61(36)
56(24)
54(30)
65(37)
236(127)

13
17
17
18
65

2,166
2,808
2,276
2,830
10,080

   - 예천시찰장 이선교 씨의 노회 분립안을 다음 노회시까지 보류  하자는 헌의를 부결하고
  - 노회분립은 1985년 3월 노회시에 하고
  - 분립하는 노회의 명칭은 가칭 영주노회로 하여 총회에 헌의키로 찬성 141 반대 60 무효 2 합 203으로 결의했다. 그런나 1983년 12월 26일 14기 경안노회 제 114회 제1차 임시노회가 영주제일교회에서 모여서 노회분립시기를 1984년 3월로 정정하고 분립위원 20명을 임원회에 맡겨 재선임했으니 다음과 같다.

     김기수 기계한 조준래 김영기 이정일 이동창 김이한 마광수
     이양호 권중원(이상 경안노회)
     김태한 조석규 주용수 김충효 이선교 권원득 김주한 김창업
     장기학 박세환 손용명(이상 영주노회)

재선된 분립위원회는 위원장 조석규 서기 김영기로 조직을 하고 회의결의를 보고했다.(경안노회 제115회 영주노회 제 1회 보고서 P61.-62)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명칭은 경안노회와 영주노회로 하고 3월 6일  14시 안동교회에서 모여 분립예배를 드리고
    영주노회는 영주제일교회로 가서 회무를 차리한다.
  - 영주노회 소집책임자는 분립준비위원장 조석규 목사로 한다.
  - 각 기관이사는 양 노회에서 공동관리하고 유지재단은 이사와 경비를 공동 부담하고
    경안성서신학원 보조는 양노회가 분담하나 영주노회에서 신학원을 설립하면 해노회가 부담한다.

   2. 노회 분립

 1984년 3월 6일 14시 안동교회에서 제115회 노회가 모여 다음과 같이 영주노회 분립예배를 드렸다.

  송영................................................................................................안동교회 성가대
  기원......................................................................./....................노회장 권원득 장로
  찬송.......................340장(개292)...................................................................다같이
  기도.........................................행 9:31...............................총회분립위원 김성억 목사
  성경.........................................행9:31..........................................................노회장
  찬양...............................................................................................안동교회 성가대
  설교...............................든든히 서가는 교회...........................총회 부회장 박종렬 목사
  기도............................................................................................................설교자
  찬송........................................434 장(개 335)................................................다같이
  축도....................................................................................총회 부회장 박종렬 목사

  예배에 이어 성찬예식을 거행한 후 노회가 개회되어 분립위원장 조석규씨의 보고를 유인물로 받고 총회 분립위원으로 노회에 참석한 박종열, 박석규, 김성억, 서정환, 인사를 받고 총회 부회장 박종열씨가 경안노회에서 영주노회가 분립됨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호했다. 그리고 김성억 씨가 고퇴와 헌법을 박석규 씨가 노회기를 영주노회 소집책임자 조석규 씨에게 전달한 후 조석규 씨의 인사가 있었고 김광현 공로목사의 송별기도로 분립 순서를 마쳤다.

   3. 예천시찰 문제

   예천시찰은 경안노회에서 분립되는 것을 불원해서 분립이 되어도 경안노회에 남기를 원했다. 때문에 예천 시찰은 분립보류헌의도  했고 분립결의시 반대투표를  했다. 때문에 노회 분립시 예천 시찰문제는 양노회가 협의하여 총회에 헌의하여 허락을 받아 해결키로 했다. 고로 예천 시찰 25개 교회는 경안노회에 남아 회원권을 청원했고 노회는 총회의 결정이 있지까지 잠정적으로 이를 허략했다.

  1984년 6월 22일 안동교회 당회실에서 경안·영주노회의 예천 시찰수습위원 연석회의를 통하여 예천 시찰은 총회의 판결대로 본래 노회가 분립을 결의한 대로 영주 노회에 속하기로 하므로 예천 시찰 문제도 해결이 되었다.

 영주 노회를 분립시킨 노회는 개교회와 시찰들의 성장속에서 단계적으로 7개 시찰로 분립하기로 했다.

  1. 안중, 안서, 안남, 안북시찰 분립

  
 1988년 9월 123회 노회는 시찰구역 재조정의 건은 각 시찰장과 노회임원들에게 일임하니 위원장 박승팔, 서기 이정일, 회원 그외 노회 임원 및 시찰장으로 조직을 하고 1988년 8월9일 모임을 갖고 안중, 안서, 안북 시찰을 안중, 안서, 안북, 안남 시찰로 조종분립키로 하고 노회에 보고하니 124회 노회는 안동시군내의 3개시찰 중에서 4개 시찰로 다음과 같이 안남 시찰을 분립키로 결의한다.

 ★안남 시찰: 교회 - 도원 용상 남부 외하 원림 동안 현내 단호 일직
                            소호리 하국곡 장사리 아곡 무릉 개곡 고곡 하아곡
                            어담 명진 벨엘기도실 용각기도실 원동기 도실
                   기관 - 경안중, 경안여중
                             그리고 북후면에 있는 교회들은 안서시찰로 조정했다.

  
2. 청송 청영시찰 분립

   청영시찰의 청송 청영의 분립은 노회 총대수가 장로가 41명으로 안중의 18명 안서의 21명 안남의 19명에 비하면 배가 넘고 또 지역이 청송, 영양 2개군으로 되어 있어서 분립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영양쪽의 교세가 약해서 시기 상조이니 때가 되도록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받아 수년간 지내오다가 이제 정치부 원안대로 분립하기로 결의했다.

  청영시찰 : 영양군내 교회 및 청송군의 진보면 파천면내 교회
  청송시찰 : 지보면 파천면을 제외한 청송군내 모든 교회

 
※ 교세대비표

구분

목사

장로총대

교회수

교인수(세례)

청송

9

23

21

1,389

영양

7

18

23

1,177


  이로써 노회는 안중, 안서, 안남, 안북, 의성, 청송, 청영 7개 시찰이 되었다.

    노회가 부립되고 시찰이 분립되는 것은 교회의 성장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역조건으로 보면 경안노회는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전형적 농촌지역이다. 가장 중심지인 안동시가 외적으로는 아파트가 들어서서 발전하는 듯하나 내적으로는 인구수가 13만정도로 십수년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런데도 해가 갈수록 기존교회는 성장하고 새로운 교회들이 개척되었다. 해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개척된 교회와 분립된 교회 그리고 가입한 교외와 기존교회의 발전상 순으로 교회성장을 일별해 보고자 한다.

   1.개척교회 운동

   우리 총회가 한국교회 선교 100주년을 10년 앞둔 1974년 제 59회 총회에서 5천교회 150만 신도운동을 하나님 앞에 서원결의했다. 고로 총회는 전도부로 하여금 개척교회운동을 주관케하고 지역별로 복음화 대회도 개최해 나갔다.

  총회에서 우리 노회에 개척을 요구한 교회수는 76개처(당시는 영주노회와 분립전)이었고 노회 임원회에서는 교세를 따라 우선 38개처의 개척을 교회와 기관에 의뢰했다.

  ① 안동영주일(각 2개처씩 4개처)
  ② 동부 서부 도원 풍산 구담 용산 소호리 예천 용궁 풍양 성내
     궁기동 창락 부석 동산 신영주 봉산 문수 봉화중앙 봉화일
     석포 춘양 현동 영양중앙 화목 청송일 의성일 성광 탑리일  (각 1개처씩 29개처)
  ③ 성소, 경안중·고, 경안여중·여상, 영광중·고, 영광여중고 (각 1개처씩 5개처)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교회개척 명령일 제대로 이뤄질 수는 없었다. 개교회마다 여러 가지 형편과 처지가 있었겠지만 교회개척에 대한 사명감도 부족하여서 개척상황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이에 총회에서는 무교회지역 곧 교회를 개척해야 할 지역을 조사해서 노회로 보내 오기까지 하였고 노회에서는 임원회와 전도부 실행위원회가 모여서 1983년 10월에 총회가 의뢰한 개척교회 대상지역 22개처를 선정했으니 다음과 같다.

 1. 봉화군 법전면 눌산1리               
 2. 안동시 송현동
 3. 예천 용궁면 소재지  
 4. 안동시 용상동
 5. 태백시 동림동               
 6. 청송부남 대전동
 7. 영풍 봉현 오현동                        
 8. 예천 개포면소재지
 9. 의송 단촌 방하동   
 10. 안동 와룡 방잠리
 11. 영풍 장수 하기리                       
 12. 안동 풍산 신양 1동
 13. 청송 부동 신점                          
 14. 영주시 가흥리
 15. 의성 금성 계일동                       
 16. 영주 문수 마광리
 17. 안동 노전 원천동
 18. 안동 임하 추목동
 19. 예천 지보 마신리                       
 20. 봉하 물야면
 21. 영주시 하망2동 동산 여상 주변
 22. 영주시 영주 4동 구공설운동장 부근

   
2.개척 교회 상황

   한국교회 선교 100주년이 되는 1984년까지 활당된 교회개척수의 수는 극히 저조하여 분립한 영주노회를 제외하고 경안노회만 살펴보면 안동교회에서 현내교회를 성소병원에서 위동교회를 안서시찰에서 신양교회를 개척한 것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우리 노회내의 교회가 대체로 농촌지역 교회로서 경제력이 빈약하여 자기 교회 자립에 급급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교회마다 자기교회의 사정과 문제점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개척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교회나 기관이 개척하지 않아도 하나 둘 교회는 개척되었다. 그것은 교회는 단순한 사람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공동체이기 때문이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제 1980년부터 현재까지 개척된 교회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현내교회

 현내교회는 우리 총회가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오천교회운동에 의해 안동교회가 개척한 교회이다.  1982년 12월 6일 전도인을 파송하여 지금은 40평의 예배당에 장·유년 6f4명의 교인이 있고 박봉락 전도사가 시무중이다.

   2) 소망교회

  1984년 4월30일 안동군 북후면 저전동에 세워진 소망교회는 이태희 구옥순 부부전도사가 기도중 저전동을 교회개척의 임지로 받아서 자그마한 잠실을 빌려서 개척예배를 드렸는데 지금은 연 80평의 적벽돌 예배당과 20평의 양옥사택에 청장년 25명 중고생 45명 아동 40명의 교회가 되었다. 오늘 이 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약 4,000만원의 건축비를 보내고도 아직 이름도 주소도 전화번호까지 밝히지 않는 경기도 지방의 무명의 성도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

   3) 동안교회

 1981년 5월 안동시 용상동에 동안교회를 개척한 이는 이천우 목사다. 이목사는 북부교회(당시 영가교회)를 담임하다가 뜻을 정하여 배나무골에 있던 자기의 집을 팔고 그 외의 돈들을 모아서 주택과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고 있는 용상동에 112평의 대지위에 건평 68평 연 89평의 아담한 예배당을 지었다. 그리고는 1981년 개척 당시 7천만원을 들은 그 예배당을 유지재단에 즉시 넣었다. 그는 돈이 모이니 욕심이 생겨서 안된다 했다.

 현재 아동 55명 학생 25명 청장년 70여 명으로 이목사는 특별히 노동자들의 인권과 사회의 민주화에 큰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4) 명진교회

 1987년 3월 15일 안동군 일직면 명진동에 명진교회가 개척외었다. 이 일을 시작한 이는 의성제일교회 원용선 장로와 박필옥 전도사로서 개척경비는 서울에 있는 어떤 분의 헌금 150만원 박 전도사의 3년 적금 300만원과 원 장로님의 헌금으로 충당되었고 개척후에는 손이 닿는대로 여러 곳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현재 200평의 대지에 48평의 예배당과 14형사택 장·유년 50여 명의 교인이 있다.

   5) 마애교회

   1987년 5월 15일 도원교회가 안동군 풍산읍 마애동에 개척예배를 드렸다. 마애동은 풍산읍 동남쪽 낙동강변 이씨 집성촌으로서 이 마을 이규훈 집사가 도원교회에 다니면서 도원교회의 관심을 끌었고 하회에 버금가는 좋은 휴양지여서 개척은 더욱 확실시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가겟방을 임대해서 시작한 마애교회는 지금 대지 178평 밭 240평위에 40여 평의 조립식 예배당을 세웠고 교인은 장·유년 합해서 40여 명이며 처음부터 유경종 전도사가 시무하고 있다.

    6) 원동교회

   1988년 5월 15일 안동군 일직면 원도에 안동교회 권경희 권사와 목회자 강태원 전도사의 협력으로 개척이 시작되었다. 현재 대지 158평에 건평 39평 예배당에 장·유년 50여 명의 교인이 있다.

   7) 물한동 교회

   안동군 북후면 물한동에 1983년 4월부터 영주제일교회의 최금영 권사가 상주하여 호별방문전도를 함으로써 개척이 이루어졌다. 불신의 척박한 땅에 늙은 할머니 한분이 무엇을 할까 하고 반대자들이 방임함으로 가능했던 이 교회는 오늘날 100평의 대지에 예배당 26평 사택 26평의 건물과 장유년 70여 명의 교인이 있고 김대년 전도사가 목회하고 있다.

    8) 신양교회

   1983년 신양교회는 안서시찰에서 개척을 시작했다. 신양교회는 신양 1·2동 서미동 등 넓은 지역을 갖고 잇으나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악조건의 영향으로 개척 8년만에 교회의 명의를 얻었다. 그러나 신양교회를 담임하는 김복순 전도사는 악조건 속에서도 자비를 투자해서 326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성전건축의 꿈을 꾸면서 일면 거리가 멀어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많은 서미 3옹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던 중 1991년 10월 자비 350만원으로 13평의 기도실을 짓고 오치마을에도 집 한채를 빌어서 기도실을 개척하고 장은주 신금남 두 전도사를 불러들여 전도하고 있다.

    9) 방하제일교회

   1989년 3월 노회에서 방하제일교회 명의 허락이 있었다. 이 교회는 1985년 단촌교회에 다니던 성도들이 73년 10월부터 기도실로 시작해서 현재는 장유년 40여 명의 교인에 30평 조립식 예배당을 곧 지을 계획으로 배기형 전도사가 시무중이다.

    10) 광음교회

   1988년 9월 17일 서부교회에서 시무하던 김종숙 전도사가 이교회 개척을 시작하여 1990년 9월 노회에서 교회 명의 허락을 받았다. 현재 150평 대지위에 27평 예배당과 15평 사택건물을 갖추었으며 장·유년 70여 명의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11) 애명복지교회

    애명복지원은 정박아들의 자활복지촌이다. 오산동에 영명학교를 세운 배연창씨가 정부의 도움을 얻어 이 복지촌도 세웠는데 원장 박승탁 씨는 서울신학대학 졸업자이며 또 오산교회를 시무하던 최호상 전도사가 이 교회로 부임해서 희생적으로 직원과 원생들의 신앙을 지도하다가 직장암 수술을 받고 지금은 갈멜산 기도원에 체류중이다. 직원 40여 명과 원생 200명의 애명복지교회는 온 노회가 관심을 가지고 도와줘야 할 특수교회이다.

   12) 성안교회

   1989년 9월 7일 권덕해 목사가 시무하던 청송 제일교회를 사임하고 안동시 안기동에 성안교회 개척예배를 드렸다. 개척의 열심히 모인 수십명의 젊은 성도들은 곧 구 변전소 부근에 예배당 대지를 마련했으나 지방문화재가 있어서 건축이 불가했고 안기동 서편에 새 대지를 구입해서 유치원 허락을 받아 조립식 건물을 짓고 강대상, 의자, 피아노를 들여놓고 입당예배를 드리려 했으나 인접주택을 사찰로 쓰는 사람들의 방해로 간신히 입당예배만 드린 후 성서신학원 교실을 예배처로 사용하고 있는데 1992년 4월 12일 안기동 건물이 원인모를 불이 나서 전소되고 말았다. 장·유년 100여 명의 성안교는 또 한번의 십자가의 고난을 믿음과 기도로 극복하는 날 부활의 능력으로 영광스런 교회로 성장할 것이다.

   13) 희망교회

   희망교회는 안동시 옥동 장애자 재활원에 위치한 특수교회로서 1982년경부터 곽만영 장로가 주일예배를 인도해오고 있고 밤예배는 김셩수 목사가 인도하고 있다. 도원교회와교육자선교회 교사들의 기도와 후원을 받고 있는 이 교회는 현재 세례교인 45명 서리집사 8명에 130여명 원생 거의 전부가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자못 큰 교회이다.

   14) 벧엘교회

    베엘교회는 동부교회 이전수 권사가 용상동에 개척의 사명을 받고 시청으로부터 대지를 불하받아 조립식 건물을 지어 1986년 2월 4일 처음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그 지역이 용산 4아파트 부지로 편입되어 용상유치원일부를 예배처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무료 임대 받은 터에 55평 예배당과 18평 조립식 사택을 지었으며 또 134평의 부지도 확보되어 있고 청장년 50여 명에 180여 명의 교회로 김경수 전도사가 목회하고 있다.

   15) 위동교회

    안동군 임동면 위동2리에 있는 위동교회는 종회 5000교회 운동으로 성소병원이 개척했다. 1979년 4월 25일 이미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110평 대지에 30평 예배당과 11평 사택을 세웠다. 임하댐으로 교구의 과반이 수몰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으나 이상출 전도사의 목회로 장·유년 110여명의 교인들이 모이는 알찬 교회 특히 멀리서도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16) 부남명성교회

 부남명성교회는 1988년 2월 합동측에서 나온 성도들 중심으로 시작이 되어서 서울 명성교회의 후원으로 195평 대지위에 40평 예배당을 건축했고 1991년 3월에 교회명의를 허락받았으며 지금 박이우 전도사가 장·유년 50여 명의 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17) 용각교회

   1985년 7월 29일 소호리교회에서 일직면 용각동에 교역자를 파송하고 전도비를 부담하면서 개척은 시작되었고 서부교회 김상규 장로의 맏사위 황재길 장로(당시 서울 송천교회)가 자기집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짓는다는 믿음으로 헌금한돈으로 180평 대지위에 42평 예배당과 사택을 짓고 지금 이연숙 전도사가 장·유년 60여 명의 신앙을 지도하고 있다.

   18) 병옥기도실

    노달교회에 다니던 할머니 한분이 자기 밭 259평을 헌납함으로 시작되었고 지금 천성명 전도사가 서울명성교회의 도움으로 30여 평의 예배당을 지을 소망으로 목회하고 있다.

  
  19) 자품기도실

    1983년 11월 27일 시작된 자품교회는 개곡교회 김영진 장로가 매부 문원순 목사의 전도비로 김원한 전도사를 파송함으로 시작이 되었고 자기 가정의 헌금과 권태복 목사(현 속초중앙)가 성지순례 여비로 모았던 300만원을 내놓아 200평의 대지위에 30평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이곳에 와서 전도하던 김원석 장로 내외분이 연탄가스로 소천하는 아픔도 겪는 이 기도실을 남흥순 전도사가 부임해 치유하고 있다.

    20) 상화기도실

   1975년 7월 1일 단촌지역에서 객지에 나가 있는 신앙동지를 회원들의 후원으로 개척이 시작되어 현재 예배당 30평 사택 20평을 건축했고 오천택 전도사가 시무중이다.

    21) 기사기도실

    안동군 예안면 기사동에서 정상교회에 다니다가 갈분기도원에 가서 병고침을 받은 정태숙 집사 김수확 집사 등이 자기 동리에 복음을 전하고자 1988년 봄부터 기도실을 시작해서 지금은 12평 예밷아울 짓고 20여 명이 모이는데 최종락 전도사가 시무중이다.

    22) 영광기도실

   안동군 와룡면 서지 1리에 영광 기도실은 안동교회 강한교 권사가 500여 평의 밭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시작해서 10여 명이 모이는데 이재호 전도사가 목회하고 있다.

   23) 산야기도실

   산야기도실은 와룡교회에서 지재호 장로 중심으로 산야 1,2,3동 400여 명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자 1981년부터 시작해서 70평 대지 위에 25평 예배당과 15평 사택을 지었다.
 
   24) 은혜기도실

   성서신학원을 졸업한 강연숙 전도사가 개척하고 있는데 안동시 용상동 동편 발전지역으로 꼭 개척이 필요한 시외곽 지역이며 그만큼 경제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지역이다.임대한 6평 정도의 방이지만 아동과 학생중심으로 100여 명 가까이 모이는 가운데 있어 가시적 준비와 체계적인 지원이 시급적 요청되고 있다.

  3. 분립된 교회 

   1) 용상제일교회

   1981년 12월 12일 용상교회에서 분립한 용상제일교회는 다음해 10월에 제1성적헌당 및 김영기 목사 위임식을 하였으며 1985년 11월 16일 장로 2인을 임직하였다. 1986년 2월에 김광식 목사가 부임하여 1987년 9월에 용상동 1179-154에 195평의 대지를 매입하고 1991년 1월 12일 건축을 시작해서 지하 1층 지상 2층 연 302평을 완공하고1992년 5월 24일 입당예배를 들였다.

    2) 중부교회

    1981년 6월 28일 동부교회에서  동부동 117번지로 중부교회가 분립하여 김광식, 김영기, 김형수 목사가 부임했다. 현재 장로 6, 안수집사 7, 서리집사 49명으로 제직만 72명이고 세례교인만 230명인 실력있는 교회이나 무엇보다 먼저 시내으 적지에 부지를 마련하고 하루속히 예배당을 건축해야만 제대로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처지가 있다. 분립 10년도 넘었으니 총력을 경주해서 서두를 일이다.

    3) 혜성교회

    1983년 3월 6일 진보제일교회에서 분립한 혜성교회가 9월 노회에서 교회명의 허락을 받았다. 분립당시에는 혜성여상을 운영하던 김영곤씨와 그 교직원들이 주축이었으나 지금은 윤석홍 목사가 장.유년 150여 명의교회를 목회하고 주는 교회의 모습을 가꿔가고 있다. 그러나 이 교회도 예배당 대지나 건물을 확보하지 못한 어려움을 안고 있다.

    4) 고천교회

    이 교회는 거리상 이유로 벌써부터 분립얘기가 있어왔으나 임하댐 건설로 임동교회의 수몰이 확정되자 1986년 9월 노회에서 고천리 고천교회로 분립허락을 받아 150평 대지에 35평 예배당과 12평 사택을 건축했다. 교인은 유태호 장로 중심으로 장유년 45명이고 교역자는 문정자 전도사가 계속 시무하고 있다.

     5) 송일교회

     안동군 길안면 송사리 송일교회가 분립했다. 20여년이 넘도록 옹천교회를 시무해온 강대본 장로가 교회개척의 사명을 받았다고 일방적으로 분립을 선언해서 한동안 모교회와의 관게가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반석교회는 옹천동 527번지 옛 교사에 자리를 잡고 1990년 9월 4일 명의르 허락받고 당회도 조직하고 성서신학원원장 조준례 목사를 목회자로 장.유년 188명의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4. 가입한 교회

     
1)광석교회

      광석교회는 장근필 목사(당시 전도사)가 현재의 예배당 맞은편 언덕에 개척을 시작하면서 서울 광성교회의 도움을 받게 되어 서울 동남노회에 속하고 이름도 광성교회라 했다. 그러나 교역자가 이명희 목사를 거쳐 박중창 목사가 부임하고 교회가 성장하면서 지역노회에 속하기를 희망했고 서울 광석교회와 그 노회도 이를 허락해서 1989년 3월 제125회 노회에서 가입허락을 받았고 이와 동시에 서울 광성교회에서 사준 2,000여명의 부지를 팔고 현재의 위치에 146평의 대지를 매입하고 여 217평 예배당을 건축하고  90년 10월 18일에 헌당과 함께 장로 세사람을 임직했고 1992년 5월 14일에는 목사위임도 했다. 1991년 3월 현재 장 유년 241명의 교인이 있다.

    2) 원천교회

    안동군 녹전면 원천2리에 있는 원천교회는 봉화중앙교회에서 개척했다. 그러나 경안노회지역이므로 설립한 교회와 개척한 교회가 합의하고 우리 노회에 가입키로 했고 이에 우리 노회는 가입을 허락하고 봉화중앙교회에 감사패를 수여했다.원천교회응 대지 57평 연 42평 예배당과 25평의 사택이 있고 교역자도 김도환 전도사이다.

    3) 도진교회

    안동군 북후면 도진동에 있는 도진교회는 서울 합천교회 장재도 목사가 자기 고향에 있는 300평의 밭에 33평의 예배당과14평의 사택을 지어 우리노회가에 가입울 시켰다. 현재 장.유년 40여 명의 교인이 있고 김호원 전도사가 시무중이다.

    4) 반곡교회

    의성군 안편면 반곡리 합동측 반곡교회가 가입을 신청해 와서 1987년 11월 18일 임원회(회장 박종석 서기 장세문)에서 받기도 하고  19일 임원들 세명이 교회를 방문했다.현재 권영택 목사가 시무중이고 청장년층 42명 유년 21명의 교인과 250평대지에 예배당 32평 부속건물 18평이 있다.

   5.교회성장

    모든 교회의 상화을 낱낱이 소개할 수는 없다. 교회는 주님 부활의 생명의 능력속에서 항상 성장해 가고 있다. 일례를 들면 안동 군내에 국민학교가 1년에 10개교 이상이 분교가 되거나 아예 문을 닫는 현 실속에서 농어촌 지역에 위와 같이 교회가 개척되고 있는 것은 부활과 영생의 능렬을 가진 교회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고로 이제  시찰별로 기성교회의 성장상을 일별해 보고자 한다.

   1) 안중시찰

   안중시찰에는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19개 교회와 2개의 기도실이 있다. 위치, 교세, 인물, 역할 여러 면에서 노회에 중심인 안동교회는 1980년 1월 1일 김기수 목사가 부임하고 부임당시 18명이던 당회원이 지금은 33(시무 26)명이 되었다. 그만큼 교세가 성장한 것이다.그리고 1981년 1불 선교후원회를 조직해서 해외선교사를 후원하기 시작한 것을 시발로 창립 80주년을 맞이한 1989년 5월에는 필리핀에 신정식 선교사를 파송했고 일본의 이병구, 가봉의 김상옥, 대만의 김달훈, 멕시토 신상길, 중국의 이광숙, 코스타리카의 민영진, 필리핀의 이교성, 일본의 이태용, 선교사와 장신대에 온 유학생을 돕고 있다.

    1983년에는 옛건물의 모습을 보존키로 하소 본당내부를 크게 수리하고 교육관을 증축했으며 1989년에 교역자관과 1990년에 목사관을 준공하고 국내외에 세차레의 의료순교도 실시했다. 송천교회는 1988년에 예배당 건축을 시작해서 익년 2월 18일 헌당하고 이기형 목사가 위임하여 대학촌교회로서 선교에 힘쓰고 있다. 임동교회는 고천교회를 분립시키고 수몰로 인하여 새 임동 347평 대지에 150평 새 예배당을 짓고 당회원도 증선임직시켰다.

    이천교회도 1983년에 15평 사택을 마련하고 1984년에 40평 예배당을 신축했고 남선교회도 1982년 4월에 45평 예배당 헌당식과 장로 임직원을 거행했다. 오대교회도 1986년에 사택을 신축하고 익년 11월에 장로를 임직했으며 금속교회도 1985년 9월에 성전을 증축하고 장로 임직식을 거행했고 길안교회는 1986년 4월에 사택을 신축했으며 임하댐으로 수몰되는 용계교회는 예배당을 이전신축하고 1988년 11월에 헌당 및 임직식을 거행하고 임용수 목사가 시무중이다. 송사교회도 1986년 대사기도실을 건축하고 1990년에 50평 새 예배당을 헌당하며 임직식을 거행했다. 묵계교회는 1985년에 창립10주년 예배를 드리고 청년회관과 목양실을 건축했고 1984년 12월에 사월교회는 사택을 구입했고 김광식 목사가 시무하는 용상제일교회는 1987년에 195평 대지를 구입하고 1991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92년 5월 24일에 지하 1층 지하2층 연 300평 예배당에 입당했다.

    2) 안서시찰

   안서시찰에는 28갸 교회와 4개의 기도실이 있는데 서부교회는 30년간 시무하던 김원진 목사를 원로 목사로 추대하고 1990년 8월에 홍만조 목사가 부임 1991년 5유월에 유임하여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현재 당회원이 18명이고 장유년 948명의 교인이 있다. 송현교회는 1990년에 장로3인을 임직하고 교육관을 건축했고 1991년 12월에 박태식 목사가 위임했다.

  서울 동남노회에서 가입한  광성교회는 1990년 10월에 성전헌당과 장로3인을 임직시키고 1992년 5월 14일에 박중창 목사가 위임했다. 1982년에 80주년을 맞이했던 풍산교회는 1981년에 사택을 건축하고 1985년에 새성전 1층을 교육관으로 건축하였고 1992년 2월에 연250평의 예배당이 입당하여 1984년에 부임한 장세문 목사가 9명의 (시무 7명 원로 2명) 장로들과 함께 교회창립 9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 윤진섭 목사가 시무하는 구담교회는 1987년 2월에 전기누전으로 예배당이 전소되었으나 연 150평의 예배당을 아름답게 신축해서 1988년 4월 21일 장로임직과 함께 헌당했다. 소산교회는 1991년 교회설립 8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고 권영율 목사가 부임했으며, 풍북교회는 1987년 9월에 15평 사택을 건축했다.

   하회교회는 낡은 함석지붕건물이었는데 당국에서 민속촌 조성관계로 철거를 요구해 1985년 3월 노회에서 김기수 박종석 이언복 씨로 대책위원회를 세워서 문공부로부터 한옥예배당 건축비지원을 힘썻으나 결실이 없었고 권석호 목사를 중심한 자체현금과 류돈우 의원의 후원으로 1990년 9월 25평 예배당을 헌당하고 1991년 70주년 기념 예배를 들였다.

    이준영 전도사가 시무하는 도양교회는 1992년 2월 28일 700평 대지위에 연 80평 예배당을 헌당했고 서후교회는 1984녀42평 예배당을 건축하고 1986년에 22주년 기념식과 임정식, 1989년 11월에도 임직원이 있었다. 명동교회는 1986년에 교육관 1989년에 선교차량(15승)구입 1991년에 24평 사택을 건축하고 1985년과 1991년에 임직식이 있었고,이송천교회도 1991년에 연 54평 예배당을 건축 1986년에 장로 집사 권사 임직식을 가졌다. 이명수 목사가 시무하는 기산교회는 농촌교회도 자립을 넘어 주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목적으로 장기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있는데 2,000년까지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선교금 5,000만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민속촌 하회마을에서 강건너 남서에 위치한 광덕교회는 지리적인 조건을 살려 전원적인 교회로 성장하고자 3,000평이 넘는 부지를 새로이 확보하고 새예배당과 수양관 건축을 위해 힘쓰면서 이무일 목사가 시무중이다.

    조규광 목사가 시무하는 옹천교회는 1986년 사택건축, 1989년 70주년기념, 1990년 선교관 대지 234평 매입 1991년 본당수리 1992년 4월 26일 원로장로 추대식과 장로 2명 임직식을 가졌다. 1985년 12월 11일 장로 2인을 임직한 이송천교회는 각고 끝에 1991년 200평 대지에 연 53평 예배당을 건축했고, 1983년 48평 예배당을 건축하고 장로임직을 한 두산교회, 1987년 9월 사택을 건축한 연곡교회 이외에 죽전 태화 신전 오산 등등의 교회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장을 위해 애쓰고 있다.

  3) 안남시찰

   22개 교회와 1개 기도실이 있는 안남시찰의 1번지는 도원교회로서 1982년에 사택을 건축하고 1982년에 사택을 건축하고 1983년에 교회묘지를 구입하고 1985년 5월 박종석 목사 위임, 장로 6명 임직하고 1985년 12월 1989년 10월 연이은 임직식으로 장로 15명의 교회가 되었고 1989년 175평 선교원 부지를 매입하고 1990년 3월에 선교원을 개원하였다. 1986년도에 부임하여 1989년에 목사안수와 함께 위임한 서임중 목사가 시무하는 용상교회는 1981년 용상제일교회분립, 1985년 사택구입 1987년 예배당 33평 증축 1990년에 교육관 건축 1989년 1990년 임직식을 계속하여 시무장로 13명 장유년 1,000명의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김계한 목사가 건축하여 입당하고 1984년에 장로 임정식, 1991년 4월에 헌당식과 위임식을 거행했다.

   소호리 교회는 1982년 140평 성전을 건축했고 1985년 용각기도실 개척 1985년 교육관건축 1990년 10월 9일 81주년 기년식을 거행했다. 김명구 목사가 시무하는 무릉교회는 1986년 사택을 건축하고 1991년 4월 5일 목사위임과 위임식을 있었다. 개곳교회는 1990년 12인승 차량구입 1991년 4월에 임직식이 있었고 김성재 목사가 목화중이다.  1984년 사택을 건축하고 1987년 예배당을 건축한 일직교회. 1985년 사택을 건축하고 1991년에 예배당을 증축하고 12월 15일 헌당 및 임직식을 가진 장사리 교회, 1984년 8월 예배당을 수리하고 사택을 건축한 하아곡교회, 1984년 사택을 신축하고 1990년 3월 15일 성전건축기공예배를 드리고 연 78평 예배당을 지어 12월에 입당한 원림교회 이외에 외하. 아곡, 고곡, 어담교회 등등 모두 농촌에 위치한 귀한 주님의 몸된 지체들이다.

  4) 안북시찰

   안북시찰은 25개 교회와 3개 기도실이 있다. 동부 교회는 1981년 중부교회가 분립하고 1983년 5월 김재화 목사가 부임, 1985년 10월 위임하여 오늘에 이르는 동안 1986년에 목사관 1988년에 부교역자 사택을 구입하고 1988년부터 경안학원에 선교 담당 성경교사를 파송하고 기존의 예배당을 팔고 1990년 1월 603평 부지를 당북동에 마련해서 7월20일에 성전을 보언하고 임직식을 거행하여 당회원 22(시무17)명의 교회로 선장하였다.

   대지 180평 위에 연 140평의 조립건물을 지어 입당한 북부교회는 이순창 목사가 서울 연신교회로 가고 김재용 목사가 부임해서 지역발전과 함께 장로 5명의 교회가 되었다. 김한식 목사가 시무하는 녹전교회는 1979년 12월 28일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장로를 증선하고 1989년 10월 3일에는 80주년을 기념하여 교육관 봉헌과 임직식을 거행했다. 1987년 12월 13일 이창우 목사가 위임을 받은 와룡교회는 1984년 1987년 1988년에 제직 임명을 거듭하며 전도열이 왕성한 교회로 청장년층 130명중 원입신자가 30여 명이나 되는 교회이다.

   매정교회도 1991년 12월 배송범 목사를 위임하고 임직식을 가졌고 김병태 목사가 시무하는 방하교회도 1987년 기념예배와 임직식을 거행했다. 임만기 목사가 시무하는 예안교회는 1984년에 성전헌당, 1987년 장로 임직과 차량구입 1988년 80주년기념예배 1990년 교육관을 개축하였다. 김재홍 목사가 시무하는 의일 교회도 1986년 사택을 신축하고 1991년 10월에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손학수 목사가 시무하는 삼산교회는 1982년 성전건축 1989년 사택건축 1984년에 헌당식과 임직식 1989년에 교회를 수리하고 장로르 즌선한 안흥교회 , 1989년에 사택을 신축한 사신교회 , 1989년 교육관 신축과 임직식을 가진 지내교회, 1991년 6월 42평 예배당을 헌당한 이하교회, 1985년 사택을 신축한 주하교회, 부지중 남의 터위에 예배당을 세웠다고 헐렸지만 40여 평 조립식 예배당을 신축중인 오천교회, 1986년 성전과 사택을 건축 헌당하고 장로를 세운 동교교회 1989년 35평 예배당을 헌당한 인계교회, 1981년 6월 20평 성전을 봉헌하고 장로를 세운 신기교회, 1983년 11월 성전을 봉헌며 장로를 임직한 모산교회가 나름대로 살아 성장하는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5) 의성시찰

  의성시찰에는  27개 교회와 1개의 기도실이 있다. 1987년 4월 김오동 목사가 위임한 의성제일교회는 1979년 연 314평 예배당 봉헌 1986년 32인승 버스 구입 1991년 목사관 신축을 하면서 장로 11(시무8)명, 장유년 교인 835명의 교세로 성장하고 있다. 1986년 엄광섭 목사가 위임하고 1982년 사택 매입 1989년 15인승 차량 구입 1989년 제직 임직식을 가진 성광교회는 권태호 목사를 거쳐 권종규 목사가 부임했다. 지금의 경안노회 교회 중 가장 먼저인 1900년 3월에 창립된 비봉교회는  1986년 사택을 건축하고 1984년 1987년에 거듭 목사를 위임시키고 제직을 임명하여 장로6(시무4)명 장유년 270명의 교회가 되었다. 1985년 선교관을 건축한 단촌교회도 박창권 목사가 목회중이며 제직이 65명 장유년 교인이 250여명의 교세이다. 탑리제일교회는 1980년 10월 20일 안두화 선교사 선교기념관 연 86평을 준공했고 1985년 5월 신종대 목사가 위임했서 은혜로운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김진아 목사가 시무하는 사곡교회는  1989년 교육관을 건축하고 91년 1월에 그레이스를 구입했다. 김재원 목사가 시무하는 삼분동부교회에는 1987년 사택신축 1991년 3월 농민운동의 지도자 김효선 장로가 은퇴하고 1991년 1월 새로운 일꾼들을 세웠고, 권영택 목사가 시무하는 박곡교회는 1988년 11월 25일 장로를 임직시켰다. 이외에 1983년 2월 성전헌당과 장로를 임직시킨 노매교회, 1984년 지역봉사관을 세운 하화교회, 1986년 원로장로 추대 및 임직식 1988년 48주년 기념 경로잔치 1990년 사택과 1991년 성전을 건축한 구계교회, 1988년 사택을 건축한 학미제일교회, 1982년 성전과 사택을 건축한 제오교회, 1986년 사택을 건축한 초전교회 , 1986년 성전과 사택을 건축한 만천교회, 1985년 성전을 헌당한 명고교회, 1981년 성전헌당과 장로 임직을 하고 1986년 3월 정귀현 장로를 원로로 추대한 광암교회, 1990년에 교회 목욕탕을 건축한 중율교회 이 외에도 하곡, 공정, 동편, 팔성, 안계일 시안교회 등이 의성시찰내에 있다.

    6) 청영시찰

   
 청영시찰에는 22개 교회와 1개의 기도실이 있다. 부노회장 김용섭 목사가 영얀중앙교회는 1990년 3월 장로 네 명을 세웠고 대지 330평을 구입했으며 현재 지하 1층 지상 2층 연 240평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설계 중에 있다. 백익흠 목사가 시무하는 진보제일교회는 1984년에 예배당을 28평 증축했고 1990년 11월에는 사택 20평을 신축하여 현재하여 현재 장유년 267명의 교인이 있다. 이봉균 목사가 시무하는 월전교회는 장유년 158명 교인에 제직이 59명이고 200평 대지에 본당과 부속건물 100평의 건물이 있다. 우병열 목사가 시무하는 석보교회는 1981년 8월에 교육관을 건축하고 90년에 임직식과 1991년 6월 당회실읗 증축했다.

    이차복 목사가 시무하는 입암교회는 1989년 758평대지 위에 50평 예배당을 신축하여 1991년에 새로이 수리했고 제직이 46명이다. 광덕교회는 1988년 어린이 선교원을 개원하고 임하댐에 수몰됨으로 1990년에 200평 대지위에 50평 예배당울 신축했고 약수탕으로 유명한 신촌교회는 1989년 6월 야외수업장을 설치하고 1991년 11월 사택을 건축했다. 송강교회는 1984년 12월 17일 182평 대지에 24평 예배당을 건축했고, 가구교회는 1985년 5월 314평 대지에 60평 예배당을 지어 1986년 11월 18일 헌당식과 장로임직식을 가져 장로 3인이 되었고, 흥부교회는 1984년과 1986년에 성전과 사택을 건축하고 임직식을 가졌고, 교동교회도 1990년 10월 23일에 30평 예배당 헌당과 임직식을 거행했고, 신사교회도 1984년 3월 23일에 임직식을 가졌고 교동교회도 1990년 10월 23일 30평 예배당 헌당과 임직식을 거행했고 신사교회도 1984년 3월 23일에 임직식 1986년 성전건축 1987년에 사택을 건축하였다. 청기교회도 1987년 4월에 사택 매입 1991년 48평 예배당울 건축 했고 계동교회도 1982년 예배당을 건축했다.저동교회는 장유년 59명에 제직이 12명이고 신당교회는 연 40평 예배당 11세대  42명의 장유년 교인이 있고 주파교회는 24평 예배당에 장유년 68명, 이외에도 노달교회 화매교회가 있다.

    7) 청송시찰

    청송시찰에는 20개 교회와 1개의 기도실이 있다. 이찬욱 목사가 시무하는 청송제일교회는 1984년 당회실을 건축하고 1990년 30평 사택을 건축하고 1992년 6월에 위임했다.

    신철호 목사가 시무하는 청운교회는 1988년에 사택을 1990년에는 교육관을 건축했다. 주왕산교회는 1980년 4월 19일 48평 예배강을 헌당하고 1992년 3월 노회에서 우수영 목사가 은퇴했다. 라환봉 목사가 시무하는 부동교회는 1984년 1월 25일 헌당식과 제직임직식을 거행했다. 이정우 목사가 시무하는 마평교회는 1986년 5월 2일 38평 예배당 헌당식과 장로임직을 1989년에는 주차장을 설치했다. 최종철 목사가 시무하는  현동교회는 1980년 1월 4일 125평 예배당 준공 1984년 사택 준공 1987년 교육관 증축과 제직임직 1990년에 본당 증축과 수리를 하고 명성 감은 수락교회에 각 84만원씩 보조하고 있다. 이규석 목사가 시무하는 안덕제일교회는 1981년 어린이집 개원 1991년 창고와 식당을 건축했다. 박경양 목사가 시무하는 복동교회는 1985년 장로임직 1987년 교육관 복구 1988년 사택 신축 1989년 그레이스 구입 1989년 성전헌당과 임직식 1988년 사택신축을 했다.

    율곡교회는 1984년 29평 성전봉헌과 임직식 1989년 교육관을 증축했고, 지소교회는 1987년 11월 24일 제직 임직식을, 신성교회는 1984년 12월에 임직식을 거행했고, 감은교회는 1990년에 사택을 건축했고, 월정교회는 1980년 2월 28일 교육관헌당과 임직식 1985년 12월 27일 정용길 목사 위임과 제직임직식 1986년 사택신축 1990년 선교 복지회관을 건축했으며, 수락교회는 1991년 7월 7일 창립 83주년 기념 성회를 개최했다. 이외에도 제직 22명의 구천교회, 20평 예배당을 건축한 안평교회, 현명진 장로를 광역의회 의원으로 낸 양숙교회 등이 있다.

  6.성장한 기관들

   
 우리 노회에는 경안성서신학원 경안고등학교 경안중학교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 경안여자 중학교 성소병원 경안성로원 경안신육원 7개의 기관이 있다. 이 가운데서 근래에 그 면모가 확실히 달라진 기관들이 있다.

   1)노회 사무실 건축

   오랫동안 노회는 사무실이 없었다. 노회서류는 경안성서학원에 보관해 왔다. 이는 신학원에서 일한 김광탁 목사(당시는 전도사)와 조준례 목사가 노회 간사의 일을 겸임하고 있었기 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던 중 1983년 3월 22일 노회 임원회(회장 권원득)에서 안동시 대석동 130-2 협신빌딩 3층을 사무실로 임대하여 쓰기로 결의하고 동시에 여사무원 1인도 채용키로 해서 5월 16일 사무실 현판식이 있었으나 좁고 불편해서 1985년 3월 11일 임원회에서 김기수 진정수 김원진 김재화 박종석 구상모 정복득 씨를 노회 사무실 건립 추진위원으로 선정했고 1985년 9월 118회 노회는 재정에 관한 일은 재정부에 맡기기로 하고 이 위원회의 보고를 아래와 같이 받았다.

  1. 조직 - 위원장 : 김기수              부위원장 : 김원진
              서기  :김재화                회    계 : 구상모
              위 원 : 진정수 박종석 정복득
  2. 결의사항 및 경과보고

   1) 보 고
       ① 안동교회 구내에 짓기로 함(안동교회에 허락받음)
       ② 여전도회서 한 층을 맡음
       ③ 안동교회는 회관 위치를 현 노인회관 자리로 하고 건평은 50평 정도로 허락함

   2) 노회 헌의 안건
       회관은 지하 포함 5층으로 하며 평당 약 50만원씩으로서 노회회관 부담액은 2,500만원이
소요된다.(지하 1,2층은 안동교회 3층은 여전도회 4층은 노회)
       ① 지교회 세례교인당 1,000×11,000=11,000,000원과
       ② 노회 재정부를 통한 노회 보조금과
       ③ 현 회관 건물세 500만원으로 충당하며
       ④ 나머지 부족액은 독지가의 헌납금으로 한다.
 

  이에 재정부에서는 노회 사무실 건립비를 86년 예산 중 20%인 11,228,000원으로 하자는 안을 내어 허락을 받아 건축이 진행되어 86년 12월 5일 안동교회 마당에서 준공예배를  드리고 입당했다.

    2) 경안신육원

   김계한 목사가 원장으로 있는 경안신육원은 그 면모를 계속 일신해 왔으니 1984년 식당 및 목욕탕 57평 1987년 아동숙사 100평 1989년 창고 19평 1991년 아동숙사 100평 강당 독서실 68평 신축해서 내외가 밝고 깨끗한 건물에 12명의 직원이 80명의 원아를 돌보고 있다.

   3) 경안학원

   경안학원은 최근에 외형상 큰 변화를 맞이했다. 신안동 227번지 2,040평 대지와 연 1,450평 건물이 있던 경안여상과 굼곡동 180번지 3,000평 대지와 연 1,150평 건물에 있던 경안여중이 송현동 산 113번지에 15,252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새 건물을 지어 옮겨가게 된 것이다.

 경안여상은 지상 5층 연 2,106평 새교사로 1992년 3월 21일 이사를 했고 경안중학도 지상 4층 1,603평 새건물이 완공되는 8월경에 이사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경안고등학교도 1992년 선교기념관 지하 1층 지상 3층 연 1,728평을 건축하고 있어 금곡동 1번지에 있는 경안여중과 함께 경안학원은 전반적으로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맞이했다.

  4) 성소병원

 1987년 3월 121회 노회는 성소병원 이사회가 요청한 기본 재산 담보제공 기채승인 요청의 건을  허락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성소병원은 1988년 1월 21일 1,260㎡의 7층 80베드의 모자보건센타를 정부보증외자와 은행대부로 준공해서 총 11,093㎡에 300베드의 종합병원이 되었다. 또 30여년 간 재직해 온 정복득 원장이 정년은퇴하고 박창회원장이 취임하여 1992년 3월 현재 23과에 316명의 직원이 1일 평균입원환자 230명 외래환자 460명을 진료하고 있으며 직원신앙 상태는 게례 265명 학습 25명 입원 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