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대의 노회 활동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은 아무래도 두 노회가 합병한 것이다. 열세에 놓인 경중노회는
그 동안 교회분열의 가장 큰 상처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의성지역을 중심으로 존립해오던 교회들이
아무래도 경안노회와 합병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 오던
중 노회장 박명서 목사가 임원회 및 노회 전체에서 합병안을
검토하여 오던 중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을 1971년 5월 4일
경안노회시 편입청원의 건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경안노회에서
1년간 연구 검토키로 하였다. 이듬해 1972년 3월 노회시
드디어 합병키로 하였다.
합동노회가 안동교회에서 임시 회장
김윤식 목사(총회에서 파송함)의 사회로 찬송가 2장을 부른
후 김태환 목사의 기도와 윤상진 목사의 성경봉독(롬 12:1
~ 13) 김윤식 목사의 "선교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후 찬송 580장 부른후 김광현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회장이 회원점명을 선언했다. 경중노회 서기 박종석
목사가 경중노회 회원을 호명하니 회원 36명 중 29명 참석
7명이 결석하였고 경안노회 서기 김태구 목사가 경안노회
회원을 호명하니 회원 162명중 140명 출석 22명 결석이었다.
총회원 198명 중 169명이 출석(결석 29명)하여 성수가 되므로
회장이 경안 경중 합동노회 개회를 선언하였다.
합동노회 명칭에 대한 의논을 회순 규칙에
의한 수의위원을 양측 노회장과 각 정치부장 증경총회장으로
정하고 10분간 협의하니 경안노회로 정하고 회순을 제 91회로
결정하여 동의를 얻어 가결하였다.
또 그외 규칙은 경안노회 규칙을 잠정 채용하고 위원을
선정하여 수정키로 하였다.
이날
임원선거를 하니 장국현 목사가 회장으로. 조제봉 목사,
강석일 장로가 부회장으로 서기에 우덕석 목사. 부서기에
윤상진 목사. 회록서기에 이종윤 목사, 부회록 서기에 박종석
목사, 회계에 권원득 장로, 부회계에 천성훈 장로로 안배하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저녁 7시 30분 회장 장국현
목사는 경안 경중 합병 축하 예배를 아래 순서와 같이 드리게
되었다.
합병
축하예배순서
사회자 장국현 목사
묵 도 - 다같이
찬 송 -217장 - 다같이
기 도 - 정해동 장로
성 경 - 고전 12:4 ~ 11 - 박승팔 목사
특별찬양 - 정복득 장로
설 교 - 성령의 은사를 받자 - 김종대 목사
기 도 - 설교자
두 노회 연혁 - 김광현 목사
찬 송 - 580장 - 다같이
축 도 - 김종대 목사
예배후 회무처리에 들어가 의성시찰장에
윤용중 목사를 결의하고 보니 이제 명실상부 경안노회가
전국적으로 가장 큰 노회가 되었다. 또 경중 노회에 속했던
유지재단은 경안노회 재단 이사회를 조속히 소집하여 유지재단을
해산 결의하고 모든 재산을 경안노회에 귀속시키도록 결의했다.

1.경안학원
1969년
제 86회 노회가 열리자 의안으로 논란을 거듭해온 것은
경안학원 문제다. 사건 내용이 기록에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약 3년여 기간동안 노회록에 기록된 것을
보면 문제가 크다고 본다.
먼저, 경안학원, 영광학원, 한알학원
이사에 대해서는 노회 규칙 제 16조에 저촉되지 않도록
구성하여 70년 5월 노회시 보고키로 결의하였으며 이에
앞서 70년 2월 안동교회에서 임시노회시 경안학원 이사인준
문제는 법에 저촉되므로 최단시일내로 이사장이 이사회르
ㄹ소집하여 합법적 절차로 인준받도록 보류키로 가결하였다.
이때 경안학원 이사장 직무대리 최영두
씨의 정관 변경코자 하는 제 4장 12조는 기가키로 하였으며
1973년 4월 임시노회시 경안학원 정관 및 이사의 건은 전권의원을
선정하여 징계를 제외한 전권을 맡기기로 가결하엿다. 전권
위원은 김광현, 윤달부, 김기수, 장성석 목사와 강석일,
조문기, 장기학, 장세진, 설인철 장로이다.
그해 9월 제 94회 노회시 전권위원장
장세진씨의 보고를 받다.
전권 위원회 기소 보고
기소사실은 이사 감사 전원이 사표제출 하였으므로 기소키
않기로 하다.
청원서
노회는 사임이사들에게 아래와 같이 지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① 사임한 이사들은 노회가 춴한 자로 대치하고 물러가게
하여 줄 일입니다.
② 경안학원 정관에 대한 별지와 같은 청원은 통과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③ 정관에 관게한 학교장 및 서무직원을 이사회에
명령하여 문책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의 보고를 받은 후 경안학원 사건을
이사 인준권을 부여한 별위원을 선정하여 맡기기로 하였다.
이에 따른 경안학원 전 이사장 김동숙씨가 전 경안고등학교장
김인한 씨의 피소사건이 무죄 판결이 판정되었으므로 전
학원 이사진의 복권을 청원하였으나 이미 경안학원전권
위원회 보고가 채택되었기에 끝난 것으로 처리하니 이로써
파란의경안학원 문제는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점철되었다.
1969년
12월 15일 유성우 교감이 교장으로 취임ㅁ하여 1974녀까지
학원을 이끌어갔다.
이를 계기로 종교교육 성공을 위하여 교장 교감은 장로
이상으로 과장 교사는 집사로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2.삼성중학교
1974년 96회 노회시 거론된 것은 삼성중학교
문제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발단은 노회유지
재단에 예속된 것이 권동철 당시 교장이 이행하지 않았기에
이에 따른 수습건을 교육부장과 서기가 가서 수습하여 9월
노회에 통보하기로 약속했으나 결과를 얻지 못했다.
노회는 별위원을 구성하여 수습책을 마련토록 일임하였다.
교육부장 김기수씨는 삼성중학교 수습위원 보고를 받기로
하니 그 내용은 이러하다
1)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음
2)
삼분동부교회측 인사를 재단 이사로 현재도 재직중이며
앞으로도 현이사 임기 완료시
삼분동부교회
장로를 이사로 모시기를 확약함.
3) 재단이 충분하므로
개인 출자 재산은 되도록 빠른 시일내 법적 수속을 밟아서
환원키로
확약 받았음
수습위원 ①노회측 윤달부목사 조문기장로, 박종석목사
②학교측
권동철 교장, 김교감, 권서무과장
③삼분동부교회측
: 김흥섭장로
그러나 삼성중학교는 본 노회 소속에서 이탈해 합동측 노회(경중노회)로
가고 말았다.

1974년
3월(95회)노회시 노회장 조제봉 목사(길안교회)가 소천섭목사에
대한 고소장이 상정되어 소천섭 목사 제명청원서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다. 소천섭 씨는 구의령 선교사의지원으로 성장한
자로서 세칭 구원파라 하는 단테에 속해 비성서적 교리를
가르치므로 말썽이 되자 노회에서 제명하게 되니 국곡교회조차
잃어 버리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이에 따른 국굑교회 수습의
건이 상정되자 임원회에 일임하여 수습위원으로 윤달부
목사 김상한 목사 정복득 장로로 정하고 일체를 일임했다.
수습위원은 1974년 4월 19일 국곡교회를
방문하여 당회원을 만나 노회에서 소천섭 씨를 제명한 사실과
국곡교회를 권면하여 노회에 순종하도록 수습결의한 것을
알리고 유혹된 길에서 돌이켜 본 장로회의 신앙을 회복하도록
권면하니 이미 굳어져 완강히 거부하고 권면을 듣지 않으므로
오랜 시일을 조용히 경과하여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하고 돌아온
보고를 받았다. 또 노회에서 극동방송의 정체를 밝혀 줄
것을 총회에 건의키로 했으며 극동방송의 " 은혜의
아침 " 방송담당자 권신찬씨에 대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는 헌의서를 올렸다. 구원파는 한국 평신도복음회로
간판을 걸고 오는 도중 기독교복음침례회로 개칭(81.12.6)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다시 국곡교회가
우리 노회 산하에 들어와서 함께 복음사업에 동참하기를
기대해 본다.

1920년
권찬영, 인노절 양 선교사가 임시 성경학교를 설립한 이후
40여년 동안 기독교 교육을 실시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1960년 설의돈 선교사가 제3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안성서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이때 학생수는
총 122명으로(1년 48명, 2년 36명, 3년 38명) 교직원 9명과
함께 학원 운영의 번성기를 이루었다. 62년에는 학생수가
154명으로 불어남과 동시 제 4대 원장 남주석목사가 (63
~ 69) 제 5대 원장으로 김기수 목사가 (69~ 79) 봉직하면서
학원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63년 초기 학원은 제정의 어려움이 따르게
되자 노회에 협조를 요청했다. 년 1만원의 보조와 경안노회
산하 교회가 2월 둘쨋주일은 성서학원주일로 지키게 하여
그 연보를 학원에 보조하도록 결의하여 재원 충당을 하게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학생수는 서서히
줄게 되고 운영의 어려움이 따르게 되자 학제를 2년으로
변경하고 71년에는 신학 예과를 2년제로 변경함과 동시
장신대 목회학과에 편입토록 하였다. 그후 74년에는 이동성경학교를
운영하였으며 75년에는 학원법에 따라 경안성서신학원으로
개칭하고 77년에는 교육청에 인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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