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안노회가 조직된 이후 첫 번째 총회장은
이원영 목사요 두 번째가 김광현 목사다.
김 목사는 안동 김씨로 19193년 9월 22일 경북 의성군 봉양면
삼산동 김형동(金亨東)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대구 계성중학교에서 중등교육을 수료하고 일본으러 건너가서
관서지방에서 법학공부를 하던 중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느끼게 되어 신학에의 뜻을 품게 되었다.
조선으로 돌아와서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그때 신사참배 문제로 교회학교를
먼저 탄압하게 되어 1936년 에 평양 숭실전문이 그리고
1938녀 평양신학교가 폐교되었는데 김목사는 폐교되기 전에
일본 고베 중앙신학교에 전학하여 시학교를 졸업하였다.
안동교회에는 1943년 1월 17일 제7대 목사로 부임하였다.
45년 8월 8일 기독교 목사 구금하라는 지령을 받은 일본
경찰은 김 목사를 안동경찰서에 구속시켰으나 7일만에 해방을
맞고 8월 17일 석방되었다.
1.장년 주일통일공과 집필
1957년 1학기 주일공과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1970년까지 수고한 바 있어 전국교회에 복음의 전통성을
심는데 크게 이바지한 바 있다고 하겠다.
2.경안노회장 4선
1957년 제 62회 경안노회에서
노회장을 역임한 이후로 4선의 중책을 맡은 것은 이바지한
공이 지대함과 동시에 어려움을 이겨내느 ㄴ탁원할 능력이
있다고 해도 과언니 아닌 듯 하다.
3.찬송가
개편위원 피신
해방전 한국교회들이 교파별로
발행된 찬송가를 사용하게 되어 함께 예배드릴 때에는 그
불편함이 적지 않아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교단에서
1949년에 합동찬송가를 발행하였다.1956년 초에 찬송가
위원회가 조직되고 교회가 자라고 성숙함에 따라 1963년
위원회를 보강하여 합동찬송가 개편 작업을 착수하게 되었다.
찬송가 개편 위원 21명 중 대한 에수교
장로회 대표 5명 강신명, 박태준, 안광국, 유효준 씨와
함께 김광현 목사가 피선되어 1967년 9월에 개편 찬송가를
만들었다.
4.총회
서기 겸 총무 피선
1959년 9월 대전에서 열린 장로회
총회에서 김광현 목사가 임원으로 서기 겸 총무로 피선되어
교파 분열이 있었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총회
임원회와 평화위원회에 참석하여 수습에 힘썼다.
1960년에 2월 17~19일 새문안교회에서 통합총회를 거쳐
9월 22일 ~ 26일 영락교회에서 총회가 모여 다시 서기로
피선되었고 1961년 9월에는 총회 서기 겸 명예총무로 62년,
63년, 64년총회까지 서기으 중임을 감당해왔다.
5.협동사업부
위원, 부장역임
1958년 5월 6~8일 제 63회 경안노회에서
선교협의회 위원으로 피선되어 경안노회 선교회 대표로
활동하면서 중앙협동사업부에 관여하게 되어 선교사 이동문제,
협동사업에 관한 제반 업무를 결정하여 시행하는데 활동하였다,
그 외에도 연세대학 이사, 경안성서신학원 이사장, 성소병원
이사, 장로회신학대학 이사 숭실대학 이사등 다양한 분야에
활동 영역이 뻗쳐졌다.
6.총회장
1966년 9월 22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 51회 총회가 서울 남대문 교회에서 열려 총회장으로
김광현 목사가 선출되었다. 총회분열후 성장 일로에 선
통합측 발전에 주역을 담당하여 한국 교게를 이끌어가는
일은 경안노회로서 영광이요 자랑이라 할 수 있다.

1.경안학원
노회 산하 학원으로는 먼저 경안학원과
영광학원을 들 수 있다.
경안학원은 안동시 금곡동 선교부지와 접해 있는 경안중고등학교와
신안동 경안여자중상업학교를 들 수 있다. 이 당시 경안중고등학교
교장 김인한 장로의 보고에 의하면 교목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교훈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자,
믿음으로, 근면으로 , 협동으로> 이며 신앙교육 목표로
<①그리스도를
알게 한다, ②그리스도의 인격을 배우자, ③ 그리스도인의
지도자를 양성한다>이며 생활목표에 그리스도와
함께 신앙에 영력향상, 연구에 기록문화사업에 학생전도로
되어 있으며 성경이 주당 2시간, 경건회가 주2회, 헌신예배
월 1회, 특별행사로 수양회를 실시하며 KSCM 학생활동에서
선교를 확산한다, 당시 교목 배흥직 목사가 주관하여 직원예배
및 선교활동에 책임을 맡았다, 또 영안중학교를 경안중학교로
명칭을 바꾸고 중.고를 분리하지 않고 학교교육과 선교를
병행해 왔다, 한편 1966년 경안중고등학교 교장실에서 역사적
발전의 계기가 되는 이사회가 열렸다.
김동숙 이사장의 사회로 김상한, 임상경,
김윤식, 김인한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협성재단인 경안여자중상업고등학교를
인수하자느 ㄴ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때 이사들은 인수할
능력이 있느냐고 묻자 김인한 교장이 협동사업부 보조금
미화 4,000불을 확보하고 있어 무난히 경영할 수 있다는
설명에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인수후 초대교장 김인한 장로는
경안중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고난주간
기도회, 부활절 행사, 추수감사절 행사 그리고 여름 신앙
수련회 등을 통하여 학원선교의 앞장이 되었다,
64년(75회)노회시 경안학원 이사장은
개교 10주년을 맞아 유공자에게 노회로서 감사장과 표창장을
수여해 주기를 청원하여 허락을 얻었다. 감사장은 마삼락
박사와 반피득 박사에게 표창장은 김인한 교장에게 수여되었다.
2.영광학원
영광학원은
1954년 강경복 장로가 설립한 영광중고등학교로서 60년대
박대인 씨가 교장으로 일했다, 교육의 목표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중등학교의 교육과정에 따라 국가의 유위 신앙적
인물로 양성함에 있다, 또 교육의 주력점으로
1) 기독교
정신으로 신앙을 기른다.
2) 근로정신으로 생산교육에 힘쓴다.
3) 체육향상으로 건강교육에 힘쓴다.
그리고 주 2회 경건회와 성경교과를
운영하고 아침 직원 에배로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교훈이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 하나님과 나 그리고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연결시켜 지,덕,체의 교육적 활동과 자주, 자율의
정신으로 육성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1964년에 영광학원 이사장 강석일 장로는 영광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역시 경천애인을 교훈으로 하고 기독교정신을
앞세워 믿음안에서 예의바르고 여성다우며 헌신적으로 사랑을
실천 할 줄 아는 인간교육에 힘써왔다.
교목실 활동으로 각종행사에 따른 예배와 학생부흥회 교직원
신앙수련회와 성격통신과 입학에 따른 지도가 있으며 학생활동의
대표적인 것이 "백합노래선교단"이다.순회공연과
농촌교회 하기학교 지원도 하고 있다.
3. 한알교육재단
예천군 호명면 오천리에 반피득 선교사가
1954년 미군자재를 공급받아 교사(校舍)를 건축하여 성경구락부를
설립하여 조문기 장로가 함께 운영해 왔다.63년에 재단법인
한알학원 설립을 인가 받아 소동열 이사장 취임과 더불어
조문기 초대교장이 취임해 운영하다가 74년에는 한알농업고등학교
설립을 인가받아 한알중고등학교가 기독교교육을 병행하여
약 3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65년에 들어서면서 노회에 속한 개교회는
부흥회를 열어 교회성장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제 77회 노회시 보고에 의하면 먼저 북부시찰장 송명선
목사는 풍기 동부교회, 영주 남주지구 청년회 주최로 용상교회와
대촌교회, 원리교회, 내림교회, 평은교회, 동산교회, 부석교회,
단산교회 등이 부흥집회를 열었으며 동산교회는 단산면
구구리에 개척전도를 시작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서시찰장 강대호 목사는 용궁교회, 우망교회,
서사교회, 상락교회, 풍양중앙교회, 괴당교회, 벌방교회,
직산교회, 효갈교회, 덕율교회, 마전교회가 1월부터 2월사이에
집회르 ㄹ열어 은헤가 넘쳤다고 한다. 영덕시찰장 함준규
목사는 원황교회, 영덕교회, 화전교회, 영해교회, 달산교회가
부흥회를 열었으며, 새신자를 많이 얻어 부흥되고 있고
원황교회는 일대혼란에 빠져오던 중 김순조 목사 취임과
부흥집회로 원상복귀하게 되었다.
동편시찰장
김영한 목사는 지소교회, 월전교회, 원리교회, 가구교회가
부흥회로 열어 많은 결실을 얻었으며 신성교회는 교우들이
전력을 기울여 사택을 건축하였으며, 청송제일교회는 온
교인들이 배가운동을 하여 복음화 운동에 전력을 다해 기도하여
60명의 교인들이 마가의 다락방의 120문도를 허락하여 달라고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150명이라는 놀라운 새신자를 얻어
감사드리며 다시 300명 기도온 용사를 허락하여 주실 것을
믿고 구하는 중이라 한다.
봉화시찰장 손문준 목사는 내성교회가
부흥집회 하여 20명의 새신자를 얻었으며, 춘양교회는 유년주일학교가
배가 운동을 벌려 학생수가 400명이 되었으며, 창평교회는
새신자를 10명 법전교회도 10명을 얻었으며, 하눌교회는
방언파문제로 소란하던 것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그외 예안면 귀단동에 성광교회를 개척했고
영주 동산교회는 단산면 동원교회를 개척중이며 문수면
와현에 개척 전도하여 교회를 신축중이며, 효갈교회는 풍양면
신기동에 개척전도하여 35명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풍양중앙교회는 교인 32명이 신약 통신과를
한꺼번에 졸업했으며 영주제일교회는 강경본 장로 시무
20주년 기념과 함께 부흥회를 열어 많은 새신자를 얻었으며
간운교회는 창립 40주년 기념식이 있었으며 창락교회는
개인전도 하여 30여명의 새 신자를 얻었고, 망월교회는
강석일 장로의 협조로 전도사를 모시게 되고 입암교회는
전도사 김진규 씨가 합동측에서 병옥교회와 함께 복귀하여
감사를 드리고 기쁨을 나누었다.
호사다마격으로 경안노회 전지역이 부흥집회를
통해 많은 결신자르 ㄹ얻고 부흥발전하는 틈바구니에 끼어든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즉 방언으로 인한 문제와 한쪽을
치우치는 경향을 막기위해 노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결의문
현하
교계에 신문이 불분명한 초교파적 인사나 본교회 안사들
중에서도 장로교의 전통적 규례를 떠나서 집회를 인도하여
방언, 예언, 신유. 투시, 이적 체감, 진동 등으로 많은
신도와 교역자들이 매혹되어 전적지지환영하는 일이 있으나
그 중에는 비성서적이며 비정상적이고 비진리적이어서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교리와 신조에 맞이 아니하여 경건 건덕상 의롭지
못하여 직당으로 분열과 혼란의 피해가 적지 않으니 차후로는
강사를 청할 시에 신중을 기하여 필히 본노회 회장과 상의하여
청하되 불응할 시는 엄중한 징계에 처할 것임을 결의함.

69년에
들어서자 안동교회가 교회창립 60주년(8월 둘째주) 기념예배와
함께 특별집회(강사:신사훈 박사)가 개최되어 성대한 잔치를
가졌다. 이에 발맞추어 경안노회로 선교 60주년 기념행사에
관한 준비를 임원회에 일임하기로 가결하였다.
당시 임원 김원진 목사, 김기수 목사,
이기형 목사, 류시홍 목사, 김태환 목사, 장세진 장로,
김인한 장로, 강경복 장로 제씨가 모여서 행사에 따른 전반적인
토의를 거쳐서 행사내용을 결정 추진키로 했다. 그 중 표창대상자
선발에 따른 심사위원을 공천부장, 박충락 목사가 선임하니
위원은 김진호, 김광현, 이기형, 박충락, 김윤식, 강경봉,
최영두 제씨가 수고하게 되었다, 준비위원들이 수고하여
1969년 11월 20일 오전 11시 안동교회에서 노회장 이기형
목사가 사회하여 선교 60주년 기념식을 치루게 되었다.
1.기념식
선교 60주년 기념예배 식순
개 회 - 노회장
찬 송 - 60장 - 다같이
기 도 - 김진호 목사
성 경 - 롬 10:8~15 - 김원진 목사
찬 양 - 안동시내 교회연합성가대
설 교 - 아름답도다 복음전파자의 발 - 김광현 ㅗㄱ사
특 송 - 정복득 장로
연 혁 - 서기
감사장수여 - 노회장
표 창 - 노회장
축 사 - 시민대표 부시장 차철호
축 사 - 선교사대표 마삼락 목사
축 사 - 타교파대표 박기홍 목사
축 사 - 총회대표 - 신후식 목사
광 고 - 서기
찬 송 - 217장 - 다같이
축 도 - 총회장 안광국 목사
폐 회 - 다같이
*기념예배후 참석자 전원이 친교실에서 식사하다.
2. 표 창
선교
60주년 기념 표창대상자 명단
1) 60년 이상 계속해온 신자
김정숙(안동) 김금이(안동) 김재성(안동) 신영득(안동)
이남주(안동) 이인홍(안동) 장경영(안동)
이주한(안동) 권극성(안동) 김점향(안동) 임상경(안동)
강신덕(안동) 권택수(안동) 신을선(안동)
김진호(동부) 이도금(동부) 장사익(서부) 김달용(서부)
이종석(서부) 김수석(서부) 양재옥(서부)
소동예(서부) 박승련(서부) 이두일(임동) 김월(녹전)
이희서(녹전) 이희일(녹전) 박화홍(녹전)
우연석(안흥) 황대수(안흥) 안세화(매정) 최상균(방하)
강오남(방하) 강도분(방하) 홍재선(지내)
김기홍(지내) 김영규(지내) 김귀단(소산) 권용암(소산)
이성학(소산) 김태진(소산) 권도연(소산)
권도연(소산) 권남연(소산) 김학술(국곡) 권만두(구미)
남두조(구미) 김봉목(국곡) 유필목(소호)
권건호(장사) 이봉기(장사) 김기남(아곡) 권봉선(아곡)
김대규(무릉) 박순여(하아) 김명술(의일)
정석이(마동) 강석영(제일) 강병태(제일) 김옥순(제일)
임조동(제일) 강신목(제일) 홍인동(제일)
조원총(제일) 신기현(제일) 임용규(제일) 강엽분(제일)
권위임(제일) 강수희(제일) 김우일(제일)
이계화(제일) 강정목(동산) 곽춘학(대촌) 이대항(간운)
강내동(내매) 강봉학(지곡) 박철원(지곡)
임태심(지곡) 이계화(지곡) 이웅범(지곡) 강봉희(지곡)
김남이(지곡) 임완수(지곡) 이계주(지곡)
이일순(동부) 김길준(동부) 김난향(벌방) 정연금(상락)
전상희(상락) 김월심(상락) 양재락(상락)
양순이(상락) 이극향(상락0 김분이(상락) 김낙출(상락)
신복기(직산) 채기상(적덕) 이정숙(적덕)
강내매(문촌) 장수덕(문촌) 김재형(춘양) 장여순(척곡)
장현순(척곡) 주병호(영덕) 최명이(영덕)
손영춘(영덕) 노봉이(영덕) 박선행(매정) 김두선(매정0
이두이(매정) 한방우(원전) 정봉순(원전)
김석창(화천) 최명학(화천) 윤계식(화천) 김차희(원리)
강대영(소호) 김명석(예천) 강신유(신영주)
최윤희(신영주) 이상 117명
2) 목사 20년 이상
근속 시무자
김진호 목사(안동동부) 박충락 목사(도원) 김광현
목사(안동) 장영상 목사(안동) 이상 4명
3) 장로 30년 이상 근속 시무자
양재옥(서부) 이두일(임동) 이희서(녹전) 우연서(안흥)
신재균(안흥) 이성학(소산) 김대영(소호)
김희술(무릉) 신현장(예안) 김명술(의일) 김성진(이하)
정승교(오대) 강신유(제일) 강덕희(문수)
김길준(풍동0 김일규(춘양) 주병호(영덕) 김재성(안동)
최익현(박산) 유재명(동산) 이상 20명
4) 전도사 20년
이상 근속 시무자
이주한(안동) 이두일(임동) 유시증(하회) 김금선(동산)
유진우(하눌) 김점득(서부) 김정숙(안동)
김금이(안동) 이상 8명
5) 3대 장로
가족
김명술 장로 가족(의일) 강록구 장로가족(내매) 김길준
장로 가족(풍기동부) 이인흥 장로 가족(안동)
6) 5대이상 신앙계승가족
김진호 목사 가족(동부) 배재호 집사 가족(내매)
장병훈 씨 가족(동부) 이희서 장로 가족(녹전)
이희일 장로 가족(녹전) 김태진 권찰 가족(소산)
권오화 집사 가족(국곡) 김경도 집사 가족(국곡)
김용식 씨 가족(아곡) 권석술 씨 가족(아곡) 김희술
장로 가족(무릉) 김생봉 영수 가족(마동)
정석이 권찰 가족(마동) 강창남 씨 가족(제일) 강경봉
장로 가족(제일) 윤주한 목사 가족(제일)
강상구 집사 가족(제일) 고병무 장로 가족(동산)
김계하 씨 가족(성내) 김길준 장로 가족(풍기동부)
이은석 장로 가종(풍기동부) 임의수 영수가족(유동)
임상동 장로 가족(유동) 김영한 집사 가족(갈산)
권영출 장로가족(벌방) 배원황 집사 가족(동부) 권태진
집사 가족(안동) 임상경 장로 가족(안동)
김재성 장로 가족(안동) 강주원 장로 가족(안동)
권복경 씨 가족(안동) 박봉석 장로 가족(안동)
이주한 장로 가족(안동) 김점향 권사 가족(안동)
이인흥 장로 가족(안동) 김성례 씨 가족(안동)
김학준 장로 가족(안동) 구교익 집사 가족(안동)
장병훈 씨 가족(문촌) 장성덕 목사 가족(성내)
여석환 장로 가족(안정) 우수양씨 가족(대촌) 장성기
집사 가족(문촌) 이상 43가족
7) 10처
이상 개처 교회를 세운 교회
안동교회 : 서부 수하 도원 이하 길안 용계 금소 신당 임하
금곡 주하 명잣 용산(14처)
영주제일교회 : 반구 금광 병산 시일 신천 대룡산 전단
신영주 미울 오계 상줄(11처)
춘양교회 : 소천 임기 서벽 옥방 석포 법전 도신 분증 애당
대현(10개처)
8)
5처이상 개척교회를 세운 개인
김동숙 장로: 송천 주파 입암 노달 교동 송천
김수만 장로 : 골안 송사 금곡 백자 길안 금소 개곡 신던
고곡 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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